시민평론단
베를린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로라(Paula Beer)는 다리 밑에서 기묘한 광경을 목격한다. 검은 형상의 남자가 패들 보트를 타고 수로를 거슬러 돌아오는 모습. 지옥에서 기어 나온 그림자 같은 이 형상은 영화가 품고 있는 죽음을 예고한다. 그 남자를 본 뒤부터 로라는 환영에 시달리고, 얼굴에는 혼란과 공포가 드리운다. 이 불안한 얼굴은 히치콕의 <레베카> 속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는 위협 앞에서 흔들린다. 페촐트는 바로 이 얼굴에 천착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관객이 끝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건 로라의 얼굴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남자 친구와 떠난 시골 여행에서 벌어진다.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속도를 내던 자동차는 곧 전복되고, 그 사고로 로라는 연인을 잃는다. 사고 직전 그녀가 마주했던 것은 베티(Barbara Auer)의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그 표정은 로라의 환영과 겹치며 하나의 징후처럼 각인된다.
사고 이후 로라는 베티의 집으로 들어간다. 낯선 집은 처음엔 안식처처럼 보인다. 베티는 로라를 딸처럼 대하며 정성을 다하고, 그녀가 내어주는 방과 식탁은 상실의 충격 속에 놓인 로라를 잠시 붙잡아 준다. 그러나 집 안 공기는 단순히 따뜻하기만 하지 않다. 베티의 남편과 아들은 이유 모를 냉담함을 내비치고, 말끝마다 묘한 거리를 둔다. 로라는 환대를 받으면서도 이 집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불가해한 암시를 읽는다.
시간이 흐르며 로라는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이나, 균열은 점점 선명해진다. 대화 사이에 스며드는 침묵, 무심히 스쳐 가는 눈길, 감춰둔 듯한 비밀이 공기를 무겁게 만든다. 처음에는 평온이라 믿었던 자리가 낯설게 변하고, 그녀는 자신이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임을 깨닫는다. 결국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로라는 더 이상 그 집에 머무르지 못한 채, 도망치듯 떠난다. 떠나는 발걸음에는 안도와 두려움이 뒤섞여, 그 집에서의 시간이 그림자처럼 남는다.
페촐트는 이번에도 단순한 미스터리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처럼 로라는 누군가의 ‘거울’로 존재한다. 타인의 상실과 욕망이 그녀의 얼굴에 비치며, 로라는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환영 혹은 허상으로 기능한다. 서로의 비극을 감추고자 꾸며낸 삶의 껍질 속에서, 로라의 얼굴은 가족을 잃은 베티의 슬픔을 비추는 듯 하다.
전작들에 비해 <미러 NO.3>의 연출은 한층 절제되어 있다. 전복과 위장, 암시와 성찰로 가득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신화적 상상력을 최대한 배제하고 현실적인 감각 위에 장르적 긴장을 구축한다. 동시에 전작들에서 드러나던 장르적 전복과 스릴러적 쾌감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부드럽고 유려한 드라마가 눈길을 끈다. 폴라 비어의 미묘한 표정 변화는 영화의 불안을 정교하게 끌어올리고, 바르바라 아우어의 묵직한 존재감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몽환적 긴장감과 서늘한 불안 속에서, 관객은 오래도록 사로잡힌 얼굴들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