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흐르는 여정> : 끊임없이 쓸고, 닦아내기

By 최유정

주인공 춘희(김혜옥)는 비가 내리는 밤, 종종 홀로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다. 그녀는 차 안을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채운다.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며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는 감각이 춘희가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공간의 내부를 가득 채우는 영화와 음악을 각각 마주하는 나와 그녀 사이의 유사점이 순간 느껴졌다. 빗물에 그녀의 차 표면 위 온갖 먼지가 쓸려 내려가듯, 지금 극장 속에서 다른 온갖 잡다한 생각은 흘러가도록 내버려둬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차올랐다.

 

김진유 감독의 영화 <흐르는 여정>은 우리가 머무르는 정지된 공간 속에서 흐르는 시간과 계절, 그리고 인간관계를 따뜻한 감각으로 포착해 낸다. 춘희는 남편과 사별한 후, 아파트로 이사하며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그녀의 일상에는 곧 친모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 민준(저스틴 H. 민)과 피아노 영재인 성찬(박대호)이 새로운 가족의 모습으로 함께한다. 춘희의 남편이 남긴 피아노를 쳐보고는 성찬이 인상적인 말을 건넨다. 건반마다 다르지만, 진동이 길게 느껴지는 건반이 있다고. 혈연이나 오랜 시간을 나눈 관계가 아님에도, 이 새로운 가족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것임을 영화는 대사를 통해 슬며시 암시한다.

 

영화 속에서 자동차 백미러가 부러진 모습을 본 춘희는 속상해하지만, 민준이 전혀 다른 모양의 백미러를 끼워 넣어 고쳐둔다. 춘희는 민준이 고쳐둔 백미러에 대해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기뻐한다. 오래된 차에 새로운 것이 들어맞아 있는 모양은 춘희와 민준, 성찬이 이룩한 새로운 가족 관계의 모습과 유사하다. 사실 우리의 인간관계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혈연과 오래된 관계에 집착한다. 그러나 누구를 만나든 사실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이해하고 어우러질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새롭게 우리의 공간으로 침투하는 관계는 민준이 끼워 넣은 백미러의 모양처럼 꼭 맞아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춘희가 죽은 남편이 남긴 자동차와 피아노를 닦아내며 청소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춘희를 비롯한 그녀의 이웃들이 아파트의 복도를 쓸어내는 모습 또한 극 중에서 여러 번 비춘다. 우리가 머무르는 공간을 쓸고 닦는 것. 우리가 반복적으로 일상에서 행하는 이러한 행위는 그 공간의 주인을 드러냄과 동시에 머무름의 감각을 계속해서 환기한다. 공간 속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먼지를 바라볼 때, 머무르는 공간 속에서 그저 정지되어 있음을 누군가는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쓸리고 닦여나간 공간에는 새로운 관계를 위한 존재 혹은 그 공간의 새 주인이 늘 등장할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머무른 공간이든, 삶을 정리하는 모습이든 쓸고 닦아냄은 결국 우리를 끊임없이 흐르는 여정으로 안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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