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말리카는 꽃처럼 아름다운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소녀이다. 그녀의 엄마가 일하는 꽃집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며 엄마가 호명하는 꽃을 단번에 가져오는 등 그곳에서의 일도 익숙할 만큼 엄마와 단둘이 생활해 온 시간이 길다. 그녀의 엄마에게는 꽃집 사장인 애인도 있음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말리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친구에게서 전해 듣는다. 무슬림인 그녀의 가정에서는 엄마의 재혼은 자신이 더이상 이대로 평온하게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지속할 수 없고 같이 안 살게 된 지 한참 된 아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녀의 아빠는 카자흐스탄의 이전한 수도에서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려 그에게는 배다른 동생들도 존재한다. 한 번씩 아빠와 안부를 나누는 화상 통화를 하기는 하지만 친밀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엄마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녀 또한 딸 말리카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딸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애인과 어서 가정을 꾸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의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 남편인 말리카의 아빠에게 달려 있다. 먼 거리이기도 하고 운전하지 못하는 그녀는 서둘러 일을 해결할 생각에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이동해 그를 만나러 간다. 그는 처음에는 강경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치며 기껏 온 김에 관광이나 하다 가라고 일갈하고서 자리를 떠나 버리고 만다. 홀로 할 일이 없어진 그녀는 울적한 마음으로 도시를 구경하다가 전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마음을 바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딸에게로 되돌아간다.
잘 풀리려나 싶던 일은 가족과 지역사회의 반대로 다시 난간에 부딪히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런 정체절명의 순간에 이 모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단정한 옷으로 꾸며 입고 평소에 하지 않던 히잡도 쓰며 전통적인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리카가 자신에게 닥친 어른들의 결정에 순순히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다 같이 즐기던 외가에서의 휴가에서 홀로 몰래 빠져나와 산과 물을 건너 낯선 길을 떠난다. 하지만 어린 그녀가 행동할 수 있는 반경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자리한다.
이 영화에서 말리카의 엄마와 말리카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각자의 아빠가 운전하는 차 안의 조수석에 앉아 이동하며 열린 차창 밖으로 팔을 내밀어 음악과 바람에 손짓을 흔든다. 이 영화를 보며 다른 문화권의 무슬림 여성들을 다룬 다른 영화들이 생각났다. 전통적인 무슬림 문화권인 중동의 요르단 영화 <인샬라 어 보이>에서는 딸에게 아빠와 함께 하던 맥드라이브를 본인이 해 주기 위해 남편이 남겨둔 차를 운전 연습하는 여자의 모습으로 끝맺음하며, 올해 영화제의 또 다른 상영작인 <암린의 부엌>도 인도의 무슬림이라는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이지만 비슷한 결말을 보여준다. 운전이 보여주는 삶을 이루어 나가는 주체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