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이 영화는 한 여인이 집을 비움과 함께 시작한다. 홀로 마당 넓은 집에 마지막 손길을 더해주고 밖에서 자신을 재촉하는 부름에 뭔가 빠진 것은 없는지 둘러보며 아쉬워하며 빠져나간다. 운전석에는 마지막으로 챙겨 나온 화분을 싣고 본인은 조수석에 앉은 채로 차량 전체가 운반 트럭에 실려 꽃잎이 떨어지는 물가를 따라 유유히 움직인다.
그녀가 이사한 장소는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집이다. 그녀에게는 또 다른 커다란 이삿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랜드 피아노이다. 그녀가 이사할 1층 집에 피아노를 넣으려면 나뭇가지를 잘라내야 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현장에서 듣고서 그녀는 당황해 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청년이 피아노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더니 자신의 집에 피아노를 들이면 된다고 선뜻 제안한다. 그의 집은 맞은편에 위치한 동의 꼭대기 층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각박한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비현실적인 내용일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고 피아노를 둘러싸고 나오는 음률도 그러하다.
정상성이 각처럼 맞춰진 우리나라의 어느 한 소도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거기서 조금씩 벗어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주고받고 살아간다. 여인의 죽은 남편은 농아였지만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피아노 각 건반의 진동의 차이를 즐길 줄 알았고 비 오는 날 차에서 듣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청년은 아마 어린 나이에 독일로 입양되어 자라 한국어와 문화가 낯설지만 지역 막걸리를 와인 잔으로 즐기는 지휘자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성찬이라는 어린 학생이 등장하는데 그는 놀라울 정도의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가졌지만 음악에 매진하고 꿈꾸기에는 그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가 않다.
춘희의 삶은 남편의 죽음 이후 어디론가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중이다. 자동차는 어디론가 운전되어 나아가지 못하고 늘상 주차장에 서 있기만 한다. 피아노도 더이상 그것을 연주할 사람을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춘희가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두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같이 세수하듯이 그것들을 깨끗이 쓸고 닦아낸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담가놓은 된장도 어느샌가 비어버려 마지막 된장까지 싹싹 긁어모아도 조그만 통 하나조차 채우지 못하는 양만 남았을 뿐이다.
민준도 자신을 이 세상에 낳아준 엄마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면 이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다. 성찬은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외국 유학의 기회도 제 손으로 넣었건만 마음 편하게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하지만 계절이 흐르고 자원이 순환하듯이 그들의 삶도 그들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응당 그렇게 흘러가야 할 방향이라는 듯이 자연스레 그 끝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아름다운 콘서트의 끝에 그러하듯이 그들의 결정에 자연스레 박수를 더해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