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집으로> : 비어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By 김정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건너온 차이밍량은 대만 뉴웨이브를 상징하는 거장이다. 1992년 데뷔작 <청소년 나타>로 세계 영화계에 등장한 이후 <애정만세>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하류>, <떠돌이 개>, <데이즈> 등으로 세계 3대 영화제를 오가며 아시아 예술영화의 독창적 언어를 확립해왔다. 2013년 상업영화 체제와 결별을 선언한 뒤, VR, 전시, 설치, 회화까지 넘나들며 영화는 보는 예술이라는 신념을 고수한다. 그의 일관된 화두인 고독한 인간은 매 작품마다 새로운 이미지로 변주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신작 <집으로>에 또 한 번, 그의 신념을 응축하였다.

 

영화는 배우 호웅흐앙시와 함께 라오스의 농촌 마을을 기록한다. 라오스의 풍경은 가난하지만 강렬하다. 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며 낙관적인 여유가 어울려 흡인력 있는 공간으로 펼쳐진다. 이곳에서 감독이 특별히 매혹된 것은 이었다. 66분의 러닝타임 내내 프레임을 채우는 미장센도 대부분 집이다. 비어있는 집, 막 짓는 집, 수리 중인 집, 폐가, 그리고 흐앙시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까지. “집이라는 제재는 옛날부터 나를 사로잡아왔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영화 바깥에서 산속 폐허를 수리하며 살아가는 그의 삶과도 겹친다. 집은 떠남과 귀환의 원형이며, 비어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리라는 보편적 명제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낯설다. 서사를 거의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줄거리만 보려 한다. 그래서 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당혹스러움 속에서 관객은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말 없는 인물, 정적인 배경, 기묘한 유머. 그 속에서 우리는 거울을 보듯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

 

라오스의 많은 젊은이가 태국이나 베트남으로 떠나 돈을 번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집을 수리한다. 영화 속 흐앙시의 집도 마침 공사 중이다. 흐앙시와 여동생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며 나누는 대화에도 자막은 붙지 않는다. 감독은 일부러 넣지 않았다고 했다. “타인의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필요는 없다. 아마 집안일 이야기일 것이다. 중요한 건 내용을 아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느끼는 일이다.”라는 설명처럼 관객은 자막 없는 대화를 들으며 불편해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차이밍량이 의도한 경험이다. 우리는 늘 말의 내용에 귀 기울이지만,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한 채 듣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사운드 또한 현장의 날것 그대로다. 벌레 소리, 동물 소리, 새의 지저귐, 바람 소리, 물소리, 자동차의 엔진음, 철판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침묵의 소리까지도. 심지어 분절된 소리, 연결되지 않는 잡음, 우연히 포착된 음향은 영화적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치 않은 사실 그대로의 현장음이다. 그 모든 것은 이미 우리가 익숙해져서 놓치고 있던 소리이다. 어쩌면 이것들이야말로 인간 세상을 받치고 있는 신령적인 소리들이 아닐까. 사실 고요할수록 다양한 소리가 공존하는데, 현대인은 그것을 듣지 못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차이밍량의 영화가 관람을 넘어 사유의 장이 되는 것이다.

 

차이밍량은 이 작품을 일인칭으로 촬영했다. 그가 늘 고독한 인간을 응시해왔듯이, 화면 속에는 혼자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도 들어간다. 시를 쓰거나 산문을 쓰듯 카메라를 들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집으로>는 서사가 아니라 감각의 기록, 시간의 문장으로 완성된다. 그의 전작 <행자(行者)> 시리즈가 세계 각지를 맨발로 걷는 수행의 영상이었다면, <집으로>는 라오스라는 공간에서 멈추어 서서 집은 어떤 공간인가, 왜 사람들은 자꾸 밖으로 나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영화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느린 화면과 고요한 소리를 통해, 세상이 너무 빠르다, 천천히, 조금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은유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관객은 돌아갈 곳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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