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사랑을 꿈꿀 때>는 문학소녀의 찬란하고도 요란한 첫사랑을 가감 없이 서술한 일기장 같은 영화이다. 다그 요한 하우거루드 감독의 ‘섹스, 러브, 드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책을 사랑하는 17살 소녀 요한네는 진로를 고민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사랑을 막연히 기다리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프랑스어 선생님 요한나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끊임없이 그를 눈으로 좇던 요한네는 결국 요한나의 집에 드나들게 되고 둘의 감정이 교류되고 있음을 확신한다. 요한네는 이 열기와 충만한 감정을 언제까지고 기억하기 위해 글로 옮겨 적는다. 모든 것이 끝난 뒤, 남을 위해 쓴 글은 아니지만 누군가 읽어주길 바랐던 요한네는 시인인 할머니를 택한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가 성인이며 선생님인 여성을 사랑하게 됐다고 걱정하던 것도 잠시, 모든 것을 너무도 섬세하고도 성숙하게 풀어낸 요한네에게 감명받는다. 할머니는 그녀의 진심을 엄마도 알아야 한다고 요한네를 설득해 엄마에게도 읽게 한다. 처음하는 사랑은 요한네를 뒤흔들었고 격한 감정의 요동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경험과 감정이 미열처럼 남아있다. 그것을 오롯이 담아낸 글에는 성적인 묘사도 거리낌없이 돼있어 할머니와 엄마는 요한네의 경험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에 분노하던 엄마 또한 차츰 딸의 감정에 설득된다.
요한네와 엄마, 할머니라는 이 세 여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3대의 모습은 여성의 생애 주기로 보이기도 한다. 막 사랑을 시작한 소녀는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영화는 요한네가 복잡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을 통해 몰아치는 감정의 기복을 시각화한다. 엄마는 반복되는 무감한 만남 속에서 사랑에 시큰둥해져있고, 할머니에게는 글과 언어가 마음을 빼앗긴 마지막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이상은 멀기만 하다. 할머니 역시 계단 끝을 향해 손을 뻗지만 그 끝은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빛처럼 멀다.
영화 전반에 깔린 내레이션은 주인공이 직접 일기장을 낭독해 주는듯한데, 1인칭 시점이 소녀의 가슴을 가득 채운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묘사에 잘 어울린다. 모두가 한 번쯤 겪는 첫사랑일지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주인공의 성장이 사람들의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
평생 소중히 간직할 것이라 자신했던 거대한 감정은 어느덧 삶에서 작은 부분만을 차지할 뿐이다. 혼자만 보려고 쓴 글은 할머니와 엄마를 거쳐 정식으로 출간되어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그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성숙해진 요한네는 아직 방황하고 있지만 사랑을 놓지 않는다. 첫사랑을 앓고 지나간 소녀에게 언젠가 새로운 사랑이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