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올리베르 라시의 <시라트>를 보는 이는 누구든지 그 강렬함에 매료될 것이다. 글의 서두에 앞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취하지 않길 바란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영화 전체를 둘러싼 거대한 사막 공간과 심장을 쿵쿵 울리는 강력한 우퍼의 비트 음악이다. 감독은 시작부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채 영화를 시작한다. 이후 115분의 러닝타임으로 달려가는 영화는 크게 두 번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변곡점을 만난 영화는 극 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상당한 타격을 안긴다. 두 번의 변곡점을 포함하여 이 영화의 흐름이 전환되는 마디들을 공간과 음악을 중심으로 짚어보려 한다.
스피커 클로즈업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곳저곳을 넓게 잡으며 관객에게 서서히 공간을 인식시킨다. 이곳은 사막이고, 레이브 파티가 이루어지고 있어. 주인공은 아빠 루이스 그리고 아들 에스테반이야. 그 후 영화는 시작한 지 30여 분 만에 오프닝 타이틀을 띄운다. 타이틀 장면을 첫 번째 분기점으로 잡았을 때 첫 구간에서는 배경과 인물 그리고 톤을 제시한다. 강한 비트의 테크노 음악이 흐르는 레이브 파티에서 무아지경으로 리듬을 타는 사람들, 그 속에서 사라진 딸을 찾아 전단을 돌리는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공간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들로 보인다.
첫 번째 분기점을 지난 영화는 루이스가 뒤따르게 된 어느 레이버 그룹과의 여정을 그린다. 공간은 레이브 파티를 벗어나 황량한 사막을 질주한다. 비가 내리기도 하고 물가를 지나기도 하며 산을 오르기도 하는 과정에서 루이스 일행은 레이버 그룹과 감정적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달리는 음악의 비트 속에서 이들의 교류는 때로 유쾌하게 그려지며, 관객 역시 캐릭터들에게 이입하게 된다. 본격적 여정이 무르익는가 싶더니 아뿔싸! 두 번째 변곡점이 들이닥치고, 공간은 인물을 삼켜버린다.
러닝타임이 1시간 정도 지난 지점에서 마주한 두 번째 변곡점은 영화 속 공간과 음악의 결을 바꿔놓는다. 사막을 씩씩한 리듬으로 달리던 영화는 더 이상 공간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어쩌면 이 공간이 어디든 상관없다는 듯하다. 앞선 구간과 달리 어두운 밤안개 속을 전조등 빛 하나로만 달려가는 이들의 공간은 마치 인물의 심리 상태를 공간화한 것 같다. 먼지밖에 없는 허허벌판에 쓰러진 루이스를 자드와 일행들이 일으킨다. 이들은 도움을 호소하고 외면당한다. 음악은 더 이상 비트를 두드리지 않는다.
사막 속 다시 등장한 스피커. 테크노 비트가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비트는 초반부와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인물들의 심장을 쿵쿵 누르는 듯한 리듬 속에서 이들이 시작한 춤은 흡사 주술적 행위처럼 보인다. 그 순간, 러닝타임 1시간 30여 분. 펑! 영화는 또 한 번 크게 흔들린다. 세 번째 변곡점을 기준으로 영화 속 공간은 두려움의 공간으로 바뀐다. 겉보기엔 다름없지만 인물들에게 사막은 더 이상 그들이 쉬고 머무르는 공간이 아닌, 벗어나야만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곳으로 변모한다. 비트 없이 몽글몽글해진 음악은 조마조마한 인물과 관객의 감정을 조성한다.
시라트는 심판의 날에 모든 인간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이승과 낙원을 잇는 지옥을 아래에 둔 다리를 의미한다. 잃어버린 딸을 찾아 새로운 레이브 파티 장소로 향하는 이들은 마치 결핍을 안고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인류에 대한 은유이며, 영화 속 사막 공간과 레이브 파티의 비트 음악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시라트 그 자체가 된다. 영화의 실존주의적 메시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사막과 음악으로 구현해 낸 시청각의 세계관 속에서 민낯의 관객이 경험하게 될 영화적 몰입, 그 감각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