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철들 무렵> : 상처와 웃음이 공존하는 자리

By 구보은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한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로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아마 당신 역시 가족과 관련된 상처와 무게를 안고 있을지 모른다. 정승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철들 무렵>은 바로 그런 가족의 민낯을 다룬다. 전작 <이장>에서 이미 가족의 관계망을 날카롭게 건드리며 주목받은 그는, 이번 작품에서 ‘돌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가족에 대한 서사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영화의 중심에는 철택(기주봉 분)이라는 인물이 있다.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막노동을 하며 반지하에 사는 그는 어느 날 암 4기 진단을 받는다. 본격적인 항암 치료가 시작되자, 배우를 꿈꾸며 단역을 전전하던 딸 정미(하윤경 분)가 병간호를 맡게 된다. 한편, 남편 철택과 20년 가까이 별거 중인 현숙(양말복 분)은 형제들의 성화에 못 이겨 노모 옥남(원미연 분)의 구순 잔치를 준비하게 된다. 챙길 가족 없이 혼자 산다는 이유에서다. 철택의 형 철호는 은퇴 후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며 손자 동민을 돌보느라 철택의 병에는 무심하다. 영화는 이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가족 구성원들의 상황을 하나씩 보여주며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 나간다.

 

  하루아침에 보호자가 돼버린 정미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응원하며 씩씩하게 간병을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적 부담과 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점차 지쳐간다. 철택 역시 억울하다. 자식을 위해 희생했으니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딸의 무성의한 태도에 서운함을 내비친다. 이처럼 세대 간의 엇갈린 입장과 갈등은 자칫 진부하게 흐를 수 있는 설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한 전개와 리듬감 넘치는 연출, 마치 실제와 같은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연신 웃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묘미는 재미를 주면서도 결코 가볍게 흐르지 않는 이야기의 균형에 있다. 특히, 고군분투하는 인물들 사이로 파고드는 옥남의 담담한 내레이션은 영화에 무게를 더한다. 

 

  가족 서사가 여전히 많은 작품에서 다뤄지는 이유는, 현실에도 버거운 가족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이다. <철들 무렵>의 인물들은 가족 구성원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허덕이고, 한 개인으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러한 상처를 억지로 봉합하거나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관계의 갈등과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고 모두를 고루 끌어안는다. 뾰족한 해답을 내놓기보다 관객이 함께 고민하도록 이끈다. 다만, 자식들 사이에서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노모가 사실은 가장 즐겁게 자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작은 힌트가 될 것이다. 내내 지루한 표정으로 구순 잔치에 참여했던 엄마의 얼굴과 남편의 늙고 초라한 모습처럼,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철들 무렵’을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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