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나의 이름은> : 계승하고 반발하고 타협하는 아들의 정반합

By 임혜정

 <나의 이름은>의 첫 숏은 덤불 속 같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시작한다. 2차 대전 때 아버지를 잃은 유아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다. 어린아이가 소년으로 자란 1957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영화는 이어진다. 배경으로 보여주는 상황은 소련에 대항한 봉기가 실패한 후의 사회의 모습이다. 개인의 식료품 상점을 빼앗기고 그곳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이웃이 있으며, 배급만으로는 먹거리를 구하기 힘든 어머니들이 있다. 자유를 외치다가 목숨을 위협받고 숨어있는 청년이 등장하고, 아무렇게나 검문을 하고 경찰서로 끌고 가는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히르시 언도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는 엄마와 살고 있는데 히르시라는 성(姓)을 물려준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언도르가 지하의 구조물 앞에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은 영락없는 종교의 의식으로 보인다. 언도르는 줄곧 친애하는 아버지(dear father)라고 부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dear father in heaven)라는 기도문이 생각날 수밖에 없는 호명이다. 언도르는 아빠의 친구였던 사람에게 추방된 아빠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조른다. 어느 날 미하이 베렌드라는 이름의 남자가 언도르의 엄마를 찾아와서 자신이 아빠라고 한다. 엄마 클라러와 언도르는 유대인이고 미하이는 전쟁 때 이들을 숨겨주었던 사람이다.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는 “엥겔스는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의 관계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나 정복자가 식민지와 맺는 관계는 포함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 말처럼 히르시 가족에게는 여러 겹의 착취가 쌓여 있다. 정치적으로 소련의 지배를 당하고 있으며 유대인으로서 겪은 대학살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드리워져 있는데, 엄마를 착취한 미하이가 나타나서 두 사람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을 ‘고아’인데 ‘나의 이름은’이라고 의역을 한 이유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혹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감당하기 힘든 위험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언도르의 아버지는 상상의 아버지이고 관념의 아버지이다. 그래서 힘이 없다. 현실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아버지는 물리적으로 힘이 세고,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모자에 비해서 자원도 가지고 있다. 유대인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려는 미하이는 정복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소년이 아버지를 죽여야 성장하는 살부(殺父) 신화는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아직은 힘이 약하고 가진 것이 없는 언도르는 적당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은 장르가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대사가 없는 언도르의 클로즈업 얼굴만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 그의 마음속을 살필 수 있는 단서는 엄마의 얼굴이 인서트로 들어간 숏이다. 편집에 감탄하면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68년이 지났어도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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