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산양들> :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

By 박소연

유재욱 감독의 『산양들』은 길을 잃은 네 명의 소녀가 만들어가는 쉘터의 이야기이자, 자신들의 길을 찾아가는 성장의 서사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학교 사육장의 동물들을 몰래 돌보며 은밀한 안식처를 만든다. 하지만 조류독감이 퍼지고, 동물들이 살처분될 위기에 처하자 소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동물들의 구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의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 잔혹한 현실이 그녀들을 막아선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소녀들의 모습은 현실에 대한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버린 모험과 우정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소녀들은 각기 다른 결핍과 소수성을 지닌다. 특별함을 갈망하는 인혜, 생존 본능에 충실한 서희, 인간관계에 서툰 정애, 과보호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수민. 이들은 진로 희망서를 백지로 내고, 교사로부터 “생각이 없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모욕을 듣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은 영화의 은유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소녀들은 길을 잃은 산양처럼 보이지만, 절벽도 오르내리는 산양처럼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도로를 만들며 산양의 길을 지워버렸듯, 입시 중심과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는 청소년들의 길을 빼앗는다. 하지만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 이들은 스스로의 쉘터를 세우며 함께 길을 모색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힘이다. 네 명의 소녀를 연기한 배우들은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결을 그대로 드러낸다. 억지로 꾸민 듯한 제스처 대신, 사소한 몸짓과 대화 속 망설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인물의 감정을 실감하게 한다. 특히 서로 다른 결핍과 개성이 뚜렷하게 살아 있어, 네 명이 함께 있을 때 장면은 한층 생동감을 얻는다. 서툴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태도, 흔들리면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은 대사보다 더 강한 진정성을 전하며, 관객에게 청소년기 특유의 투박하지만 단단한 에너지를 전한다.

 

『산양들』의 가장 큰 매력은 소수자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점이다. 각기 다른 약점을 가진 네 명은 혼자서는 무력하지만, 함께할 때 다수가 된다. “소수성이 모여 다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동물을 지키려는 작은 행동이 곧 자신들의 삶을 지켜내는 힘이 된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다. 이는 곧 소녀들의 쉘터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존재의 권리를 선언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산양들』은 길을 잃었다는 낙인 속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소녀들의 쉘터는 아직 불안정하고, 앞으로도 산양들의 길은 무너지고, 또 가로막힐 것이다. 그러나 네 명이 함께 내딛는 걸음은 말한다. “길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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