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임정환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 <관찰자의 일지>는 영화 감독, 시의원, 스파이, 여행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세 가지 이야기를 연결한다. 기존 영화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방식은 달콤한 낮잠의 꿈 같다. 불연속적인 서사 속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감정적 단절을 유발하기보다 흐릿한 서사의 흐름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이야기가 달라질 때마다 인물들의 직업과 국적, 그리고 공간 또한 변화한다. 이들은 당연히 인과관계나 시간적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야기마다 달라지는 설정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느슨한 서사의 연결에서 또렷이 빛나는 것은 인물들의 공통된 고뇌이다. 인물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영혼은 동일한 질문으로 방황 중이다. 예컨대 이름과 직업을 바꾸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스파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고, 영화감독은 내가 만드는 영화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삶의 목표와 정체성이 흐릿한, 그 속에 방황하는 현대인의 표상이다.
또한 인물들은 모두 ‘부조리’를 겪고 있다. 여기서 부조리라 함은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개념을 말한다. 카뮈는 인간이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를 지속하지만 노력에 걸맞는 해답을 찾지 못하는 상태의 충돌을 부조리라 정의한다. <관찰자의 일지>의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그 어떤 명확한 답도 얻지 못한 채 시간을 떠다닌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뇌이다. 장소와 직업과 인물을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어도 내면의 고뇌는 불변한다. 이 불변하지 않는 고뇌가 서사를 끈끈이 연결하고 있다. <관찰자의 일지>라는 제목 또한 철학적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동시에, 타인의 삶을 관찰하듯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한다.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관찰자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또한 그들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과 고뇌를 관찰하며, 그 관찰의 여정은 결국 나의 내면에 정착하게 된다.
결국 <관찰자의 일지>는 삶은 왜 의미가 있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발굴하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방황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삶을 놓치 않고 순간에 집중하며 사랑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는 부조리한 삶의 무의미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위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러니는 모든 인간이 내면에 품고 살아가는 영원한 질문이라는 것을 세 개의 다른 이야기들로 교묘하고 섬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