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산양들> : 세상의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넓어지는 너와 나의 경계선

By 정해원

인혜는 서희, 정애, 수민과 함께 대입 특별반에 편성된 4인 중 한 명이다. 특별반에 편성된 이유는 미래 계획을 묻는 과제를 백지로 제출한 게 네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그들을 생각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지만, 뚜렷한 계획이 없는 게 별 건 아니다. 아직 십대인 데다, 학교에서 공부만 해온 학생이 뭐 거창한 계획을 갖고 있겠는가? 계획이라 해봤자 진학하고 싶은 대학이나 학과를 대는 수준에 그칠 시기인데 말이다. 여하튼 학교는 어떻게든 대학 진학률을 높이려 하고, 그로 인해 일면식도 없던 넷은 한 배에 타게 된다.

 

같은 반이라고 해서 모두 친구는 아니듯, 특별반에 함께 배정되었음에도 그들의 데면데면한 사이는 나이지질 않는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은 각자의 경계선 안으로 서로를 들여놓지 않는다. 그리고 사건은 발생한다. 인혜가 애지중지하는 사육장을 헐어 버리기로 학교가 결정한 거다. 동물을 지키고 싶은 인혜는 서희의 도움을 받아 숲속 공터에 둘만의 쉘터를 짓는다. 거기에 사육장의 동물을 데려다 놓고, 사육장엔 다른 동물을 가져다 놓는다.

 

다른 동물을 가져다 놓는다니? 인혜는 동물을 사랑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다른 동물로 바꿔친다는 건 곧, 그 동물은 사육장 철거로 희생될 거란 뜻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혜가 보편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동물은 똑같이 소중하니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건 인혜는 자신이 돌본 동물 즉, 자신의 경계선 안에 들어온 존재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란 의미다. 그게 특별히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아기는 사랑스럽지만 결국 가장 사랑스러운 건 자신의 아이이듯, 관계를 맺어온 대상이 더 소중하기 마련이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인혜의 행동이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그런 행동을 취했다는 사실 자체다.

 

사육장에서 돌보던 동물만 구한다는 건 그들만 자신의 경계선 안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뜻이다. 이는 인혜가 어떤 대상을 자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때 선별을 한다는 의미다. 영화의 시작에서 그의 영역 안으론 찬영과 동물만 들어올 수 있었지만, 서희를 시작으로 점점 많은 대상이 발을 들인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경계선은 점점 확장되며 바꿔친 동물, 정애가 멋대로 데려온 동물, 그리고 정애와 수민까지 모두 선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경계의 확장은 서희, 수민, 정애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흥미로운 건, 네 사람의 경계선이 넓어지는 일이 세상이 그어 놓은 선을 벗어나는 일과 함께 벌어진다는 거다. 영화 속 어른은 모두 그들의 세계를 선 안으로 한정 지으려 한다. 선생은 대입이란 선을, 부모는 얌전한 학생이란 선을 그어놓고 그걸 넘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그나마 인혜의 어머니는 산양들을 이해해 주지만 그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하니, 세상의 경계를 넘는 건 오로지 네 사람의 몫이다.

 

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의 선을 넘으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간다.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숲속 공터에 안식처를 마련하고, 안식처를 마련하기 위해 일종의 건축도 하고, 수민의 차로 알지도 못하는 먼 곳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들은 세상이 정해진 경계선을 지키지 않는다. 그 대신 동물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며 새로운 세상에 다다른다.

 

이제 네 사람 앞에 놓인 시간은 길지 않다. 몇 달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졸업할 테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그 시간이 오면 그들은 조금 더 넓어진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될 테다. 그때도, 세상은 선을 긋고 그 이상 넘어오지 말라고 할 것이다. 지난 20년간 그래왔듯이. 그때도 네 사람은 산양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일개 관객으로서 장담은 할 수 없다. 그저 응원할 뿐이다. 그들이 함께한 추억을, 삶에 새긴 경험을 잊지 않고 활용하기를. 희선이 본능을 잊지 않고 드넓은 세상으로 날아갔듯이.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한국수력원자력㈜
뉴트리라이트
두산에너빌리티
OB맥주 (한맥)
네이버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