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유서 깊다. 머릿돌 아닌 ‘정초(定礎)’를 새긴 집이, 나무랄 데 없는 직업이, 대를 이은 저주가. 선택의 딜레마를 양분으로 맥동하는 하우스호러 영화 <두 번째 아이>는 뿌리 깊은 거래의 조건을 파헤친다.
집에는 엄마와 딸 수련, 수안 그리고 ‘둘 중 한 명의 몸을 내게 빌려달라’고 하는 그림자 괴물이 산다. 감독은 괴담을 동화처럼 그려낸 오프닝 시퀀스를 문제의 집으로 연결해 관객을 유령의 집으로 초대한다. 드나드는 이의 동선을 가리는 빽빽한 조경수, 성벽처럼 쌓인 조경석과 어두운 조명은 자연스럽게 ‘집’을 주거공간이 아닌 기이한 사건현장으로 바꾼다. 좁은 나선계단도 3년 전 집에서 벌어진 일과 현재 다가오는 상실을 병치하며 관계와 감정의 불안정한 구심력을 발휘한다. 영화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엄마 금옥의 직장, 3년 만에 깨어난 수안이 죽은 언니 수련과 똑 닮은 재인을 보고 쫓아간 수목원, 재인이 잠깐 신세진 남자의 집 등 모든 공간에서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부여해 안전지대를 없앤다. 영화 전체에 성공적으로 기괴한 분위기를 입혔지만 저주의 지하공간과 실체화한 그림자의 시각화 연출은 평이한 동화적 연출에 가까워 영화에 구축한 세계와 이질적이다. 시각화된 그림자, 지하 공간에서 배우의 움직임 연출이 평면적이라 극의 긴장감이 끊어지고, 호러 장르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다. 극 중 관객의 긴장감과 고양을 가장 높게 유지해야 할 지하는 선택과 결과에서 느낀 죄책감과 후회, 두려움 그 자체, 영화의 진행에 따라 다르게 조명할 가능성을 담은 독창적 공간이라 보기 힘들게 구현돼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두 번째 아이>의 호러 요소는 선택의 문제를 구현하는 장치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 속 저주는 본질적으로 선택의 딜레마고, 영화가 끝나기 위해선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할 사람이 와야만 한다.
그림자와 같은 요구를 하며 보호자가 없는 취약한 청소년을 노리는 남성, 플래시백에만 등장하고 과거에 자신의 결정을 내린 할아버지는 강압적 선택을 대표한다. 이와 달리 이모할머니, 엄마, 자매가 있었던 수안의 가족이나 할머니 손에 자란 재인에게서 가족 구성원 간 비밀의 전수, 권위 있다고 여겨지는 직업, 돌봄, 무조건적 애정이 작동한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의 가정은 남성이 결여된 공동체다. 하지만 여성의 공간은 결손, 위기상황에서 대처능력의 부족을 설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과는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자매애’의 기반이 된다. 수안과 재인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결정인지, 올바른 선택지인지를 따질 수 있는. 그렇기에 영화 속 의상 또한 유심히 살펴봐야 할 요소다. 영화는 단 한 순간도 남성 시각에서 재현되어온 여성의 관능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선 할아버지, 이모할머니, 금옥의 시밀러룩은(similar look) 흔히 올드머니룩으로 일컬어지는 의상 친족-권위있는 직업 집단의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다. 금옥이 남색 트렌치코트는 붉은 블라우스와 대비되며 실루엣을 가려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하는 태도를 강화할 뿐이다. 정작 그는 딸인 수안과 의상에서 긴밀한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열린 태도를 가진 수안의 노란 스웨터는 금옥의 트렌치코드와 강한 대비를 보인다. 오히려 물에 빠진 수안의 스웨터를 말려주고 자신의 옷을 빌려준 지안과 잠시간 동일한 옷을 입을 뿐이다. 극 중 ‘선택’은 반강제적 신체 증여, 대체 가능한 희생양의 알레고리다. 작가 레나트 클라인은 『대리모 같은 소리』에서 “나는 선택이란 말은 두 가지 좋은 것 가운데서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 막막한 가운데 성매매를 계속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라고 썼다. 특히 여성에게 강요되는 희생은 그보다 더한 상냥함이라는 압박 아래 작동하기에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의 선택은 공정하거나 합당하다고 볼 수 없으며, 저주의 해소 조건이기도 한 ‘같은 얼굴인 사람’은 환경이나 의식의 변화 없이는 개개인의 구별이 무용함을 나타낸다. 저주를 해결하는 과정은 이런 거래를 아직 완전히 체화하지 않은 사람의 손에 달렸는데 이 지점에서 장르는 공포에서 성장으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두 번째 아이>의 주제 의식은 배우들의 흡입력 있는 연기와 출연작의 아우라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생기를 빼앗겼지만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임수정이 자살 유족 상담사인 금옥을 연기하며 그의 전작 <장화, 홍련>(2003)에 짙게 서린 죄책감, 부채의식과 리메이크에서 염정아의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던 소망을 끌어온다. 뿐만 아니라 상실의 여진을 인상 깊게 표현하며 금옥에게 양가적 감정을 안기는 도희로 분한 정인지는 영화의 BIFF 상영기간 중 뮤지컬 <번 더 위치>(2025)에서 여성에게 부당하게 부과되는 사회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는 마녀 역할로 출연하고 있다. 사실 <두 번째 아이>는 <장화, 홍련>, <번 더 위치>가 아닌 다른 작품과 주제 의식을 연결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도 ‘바로 그 얼굴’이 거기에 있었기에 <두 번째 아이>는 정초(定礎)를 새긴 집에서 벗어날 힘을 가진다.
명쾌하지 않은 혼란스러움이 남는 영화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미심쩍은 결말은 장르의 혼동과 분리할 수 없지만 유은정 감독은 주제의식만큼은 굳건히 고수한다. 시각적인 호러 연출에만 집중한다면 이미 현실에 공기처럼 스며든 공포를 놓칠 수 있다. 이것은 유서 깊은 전통이 아니며, 반드시 바뀌어야만 할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