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20대 후반에 이미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로도 꾸준히 활동을 해온 거장이자 노장인 마르코 벨로키오의 다큐멘터리 <마르크스 캔 웨이트>는 감독 자신의 슬픈 가족사, 29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쌍둥이 형제 카밀로 벨로키오에 대한 기억을 직면하는 집단적 회상이자 고백을 담은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던 이탈리아, 전후 이념과 체제가 격변하던 혼란스러운 시국,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는 집안이었으나 지나치게 신실한 가톨릭 신자 어머니와 정신병이 있는 큰형, 청각 장애를 지닌 누나가 있는 식구 많은 집에서 쌍둥이 막내 형제로 태어난 마르코와 카밀로. 모두가 자기 앞가림만 하기에도 정신 없는 나날을 보냈으리란 점은 쉽게 짐작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각자의 바쁨이 그 와중에 잃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말끔히 희석해주지는 못하리라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어느덧 양친은 모두 사망하고 본인도 형제들도 언제 세상을 등진다 한들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세월이 흘러서야 감독은 이 비극적인 가족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끌어낸다.
지극히 사적이고도 오래된 상처를 들춰내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예상보다 훨씬 가차없고 통렬한 자기 비판이라는 점이고, 동시에 이 과정에서 감독인 마르코가 카메라 뒤로 숨기보다 그 앞에 서길 택하는 용기다. 죽은 쌍둥이 동생이 보낸,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절박한 편지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마르코는 편지에 답장을 했느냐는 자식들의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대답을 회피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아들의 추정(답장 안 하셨네요)을 침묵으로 인정할 때, 카메라는 '쌍둥이 형제가 저런 편지를 썼는데 답장을 아예 안 했다고?!' 하며 경악하게 되는 제3자인 관객과 같은 표정으로 마르코를 바라보는 아들과 딸의 말 없는 비난이 가득한 얼굴을 여과 없이 기록한다. 그리고 그 아들과 딸 사이에는 양쪽으로 날선 시선을 마주한 그가, 기어이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 결심을 하고야 만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가 있다. 그래서인지 <마르크스 캔 웨이트> 중간중간 삽입 된, 자신의 가족사를 반영한 마르코의 영화 클립들도 마치 카밀로의 자살을 용감하게 직면은 못하고 영화의 소재로 사용했던 비겁한 과거의 행적을 실토하고 있는 듯하다.
작품을 여는 장면인 대가족의 식사를 위한 테이블을 세팅하는 씬과 삽입 된 영화 클립 말고는 특별히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쇼트 하나 없이, 매우 건조한(물론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인터뷰의 연속이던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다리 씬은 그래서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백발이 된 현재의 마르코가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한 다리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고, 죽은 동생이 다녔던 체육교육원 저지를 입은 청년이 그를 스쳐 달려가는 모습을 마르코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 쇼트는 이질적이다. 누가 봐도 공들여 장소를 고르고 카메라를 세팅하고 배우와 의상까지 따로 준비하는 과정으로 연출된 게 분명한, 유난히 튀는 질감의 이 감정적인 순간은 하나의 인장과도 같이 작품의 끝에 붙어 있다. 그리고 이 짧은 쇼트는 마치 이 영감쟁이한테 이 정도의 위안은 베풀어도 되지 않냐고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더 찡한 울림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