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도 함께 크고 성장해 간다(주로 인내심이 큰다...). 유재욱 감독의 <산양들>은 스스로가 돌봄의 주체가 되어 한 뼘 더 자라나는 여고생들의 이야기이다. 살처분의 위기에 빠진 사육장 동물들을 지키기 위하여 네 명의 여고생들이 온 힘을 다하는 이야기- 이렇게만 써놓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생명 존중 영화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는 그런 설명만으로 부족한 러블리하고 큐트하며 어도러블한데 프레시한 영화이다. 교육 당국과 방역 당국이 보면 기겁을 할 만한 이 영화는, 이 영화는 왜 이토록 사랑스러운가!
영화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여고생 금인혜는 학교 사육장에서 오리를 붙잡아 무려 조류독감 백신을 주사한다. 백신이라는 게 자격에서든 능력에서든 일개 여고생이 놓을 수 있는 것인지 관객이 고민할 틈도 없이, 스크린 속의 인혜는 익숙하게 접종을 마친다. 그런 인혜에게 서희가 다가와 선생님의 호출을 전한다. 다른 아이는 네가 데려가라고 떠넘기는 서희에게, 인혜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나 걔 모르는데? 떠넘기기에 실패한 서희는 짜증이 난다. 그런데,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이 영화는 이런 식이다. 손익이나 제약을 따져보면 태클을 걸만한 순간들이나 고개를 갸웃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능청을 떨다가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장벽으로 들이민다. 흥미로운 것은 해법과 장벽, 이 두 가지가 모두 '여고생'이라는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금인혜, 진서희, 이정애, 김수민. 이들은 여고생이기 때문에 가로막히는 장벽들을 여고생이기에 가능한 방법으로 헤쳐나간다. 앞서 조류독감 백신을 놓는 장면을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한 천재형 캐릭터는 아니다.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디에나 한 명씩은 있을법한 아이들이다. 각각의 사정을 지닌 주변의 아이들이 배우들의 외피를 입고 생동감있는 캐릭터가 되어 스크린을 쏘다니고 있다.
이들은 눈치껏 적당한 말로라도 써내면 될 진로희망서를 백지로 내었기에 선생님께 호출된다. 이들은 (목적을 이루려는 야비한 방식까지 포함하여) 사회가 원하는 대로 재단된 남학생 찬성과 대비된다. 선생님은 대학입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한 교실에 모은다.' 돌봄의 영역에서 사회가 원하는 바대로 덜 재단된 아이들. 사회의 사정으로 대학에 내몰리는 아이들. 미래가 없으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들의 처지는 '사육장에 모여서' '보호받는' '서로 다른' 동물들과 연결된다.
그래서 이들이 사육장의 동물들을 돌보는 일은 곧 스스로를 돌보는 것과 같다. 우물쭈물 사회적으로 미숙했던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보며 한층 성장한다. 쓰러지고 뒹굴어도 결국 자신의 힘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기특하지 않은가? 이것이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백만 가지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