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영화 <관찰자의 일지>는 여정의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단편의 모음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그 까닭은 집으로 다려다,와 낯선 도시의 도망자와 남아있는 관찰자(들)이라는 세 개의 단편을 엮어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세 개의 단편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진행된다. 한국, 세르비아, 태국.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들처럼, 영화는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파편의 조각들 같은 이 단편들로 <관찰자의 일지>는 어떠한 세계를 만들어 나갈까?
첫번째 <집으로 가려다,>는 영화감독 민주와 시의원이 된 전 남편 송천지과 그의 현 아내의 이야기다. 이곳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인데 '아메리칸 마인드'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이상한 만남이다. 민주와 천지의 이별이 이해될 만큼 영화인과 정치인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나열하듯 계속 스크린에 등장시킨다. 이혼한 부부라는 불편함의 고조는 송천지의 현 아내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한다. 그런데, 이 불편은 절정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은 파티까지 진행한다. 천지의 보좌관이라는 낯선 이방인은 관찰자처럼 그 파티에 참여한다. 재미있어야 할 파티는 썩 재미있지 않다. 이 아이러니함에 기묘한 기분을 느낄 무렵, 현 아내가 스크린 가득 등장하여 경고한다. 남편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는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을 만큼, 섬찟하다. 별로 남지 않았던 재미마저 증발하는 순간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낯선 도시의 도망자>는 세르비아에 머무는 영화감독 원중의 이야기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해 말한다. 아마도 그 포부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그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야망이리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중은 '프로'에게 추적당한다. 영화인을 추적해 봤자 나올 건 없을진대, 추적은 계속된다. 어쨌거나 추적이기에 긴장감 역시 때때로 흐른다. 그러나 '프로'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추적에 실패한다. 여기서 재미는 주제를 잊지 않게 하려는 듯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세 번째 <남아있는 관찰자(들)>은 태국에 여행 온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마이클과 돈에게서 달아나는 유튜버들과 여행객들은 태국 모 대학에 머물기도 하고, 공원에서 마피아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을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잡으라는 마피아는 잡지 않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 영화는 동일한 인물들이 새로운 인물이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헷갈릴 법도 하지만 능청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세계를 풍성하게끔 보이게 한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 단편들을 잇는 것은 '재미'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그러나 그 주제가 영화를 관통하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만 드넓은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허술하지만, 진솔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확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