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개시 2년째. 무수한 영혼이 바스라지는 동안 세계는 무얼 했는가. 우리는 무얼 해야 하는가. 영화는 무얼 할 수 있는가.
힌드 라잡을 아는가? 이스라엘군의 총격 속에서 6살 아이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구조 요청을 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녹음되어 전 세계에 공유되었고,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예상할 수 있듯, <힌드의 목소리>는 그날에 대한 영화다. 결말을 아는 비극 앞에서 관객은 한없이 무력해질 뿐이다.
영화는 푸른빛의 흐릿한 파동으로 시작한다. 파도 소리에 호응하여 넘실대는 파동은 물결인가 싶지만, 곧이어 관객은 그것이 음파임을 알게 된다. 통화 음성은 평면의 그래픽으로 시각화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 초반, 익명의 여성이 신고 도중 사망한다. 직원이 불러도 응답이 없다. 진폭이 제거되어 고요히 일직선을 그리는 그래픽은 바이탈 사인의 이미지와 겹친다.
극의 공간은 바뀌지 않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신월사 콜센터 내부만을 비춘다. 서안지구의 적신월사에서 신고 지점까지의 거리는 단 8분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구조하러 갈 수 없다. 구조대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낙관만 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부 기관의 허가를 받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른다. 적신월사 직원들은 살려달라는 외침을 듣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사자는 뒤편인 어떠한 허가와 절차. 팔레스타인에서 이것은 비단 응급 구조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집단학살을 막고 구호 물품을 지급하는 것보다 우선되는 것은 권력을 쥔 국가들의 승인이다.
영화는 실제 통화 음성을 사용했다. 현실의 음성 위로 허구의 재연을 덧씌웠다. 후반부에는 실제 적신월사 직원들의 영상을 삽입하기도 한다. 관객은 직원들과 함께 콜센터 내부에서, 최초 신고부터 그 이후까지의 좌절을 그대로(결국 간접적이지만, 최대한 체험적인 방식으로) 겪는다. 꾸준히 극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건드리던 영화는 종내에 실제 취재 영상과 인터뷰를 띄우며 현실로 끝맺는다.
극한까지 끌어올려진 무력감 다음에 오는 것은 수치심이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는 콜센터 직원, 구조대 파견을 거절하는 상급자,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힌드의 음성을 녹음하려는 기자. 하지만 그날 서안지구에 있던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시차를 두어 안전한 국가, 안전한 도시, 안전한 장소에서 ‘관람’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부끄러움을 무릅쓰며 사건을 영상화했다. 부끄러움을 알기에 예의를 갖춘다. 비극을 재구성하지 않는다. 현장을 재연하지도 않는다. 공연히 자신의 의사를 떠벌리지 않는다. 영화는 스스로의 위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영화는 분명히 팔레스타인 외부에 있다.
오프닝과 마찬가지로 엔딩에서도 파도 소리가 들린다. 푸른색의 크레딧과 바다가 내는 소음을 앞에 두고, 객석에서는 오직 침묵만이 흐른다. 극장은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 현장이 되고, 모든 것을 목격한 관객은 이 제의에 동참해야 한다. 건물의 잔해와 척박한 땅의 이미지로 익숙한 가자지구에도 바다가 있다. 서안지구의 요르단강부터 가자지구의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존재하고 있다.
사건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영화는 영화의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관객은 무얼 할 수 있는가. 실천이 무엇이고 행동이 무엇인지. 그들을 도구화하는 것이 끔찍이도 싫지만 그럼에도 수치심에 잠식된 채 글을 쓴다. 이 페이지에 이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국제집단학살학자협회(IAGS)에서 2025년 9월 1일 발표한 결의문을 토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