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흐름, 즉 어디론가 움직이는 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한 시작점이 필요하고, 거기에 적절한 동력이 발생해야 한다. 이 영화의 인물인 춘희는 그 운동의 시작점임과 동시에 주변에 물결을 일으키는 존재다. 그녀는 한 곳에 고이지 않고 부지런히 자정작용을 해내며, 다른 곳으로의 물꼬를 터 흐르게 만든다. 춘희는 영화 속에서 내내 움직인다. 병원에 수어 자원봉사를 가고, 남는 시간엔 남편과 살던 집과 남편의 차, 남편의 피아노를 매일 닦아낸다.
첫 물꼬의 시작은 남편의 피아노다. 피아노를 집에 넣으려면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조율사 사장님의 말에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낯선 남자인 민준의 집에 두는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결정이 가능한가. 그 의외성의 시작은 ‘나무를 벨 수는 없다’와 ‘저 남자 인상이 선해’였다. 주위의 살아있는 것들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마음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 그런 그녀였기에 이런 방향성의 시작을 만든다. 그녀의 흐름은 예상 밖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은 춘희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남편의 피아노를 민준의 집에 옮기는 시퀀스가 성립될 수 있었던 건 민준의 다소 엉뚱한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옮겨진 피아노는 사장님이 조율하고, 민준이 그 음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이후 춘희가 정성스레 닦아내며 다시 새로이 피아노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세 사람의 하모니(조화)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이후 민준이 소개하는 성찬이라는 인물을 통해 피아노는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이 피아노는 춘희 남편의 차, 집과 궤를 같이 하며 춘희의 변화를 보여준다. 어느 날 춘희는 민준의 집 앞에서 성찬의 연주를 듣게 된다. 그 순간 춘희는 깨달았을 것이다. 멈춰 있던 물건들의 먼지를 닦아내는 것만으로는 생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고여버린 물은 새로운 꽃을 피우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피아노는 성찬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차는 세 사람의 여행의 동반자로, 집은 민준에게 새로운 고향으로서 변신한다.
이 모든 변화 속에 춘희 또한 함께 나아간다. 민준 덕에 춘희는 매일 닦기만 했던 피아노를 연주하고, 남편 없이는 가지 않던 공항에 방문한다. 민준도 춘희 덕분에 자신의 어머니를 찾는데 도움을 얻고, 맺혀 있던 엄마에 대한 응어리를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이 따뜻한 여정은 끝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여정이 흐르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서서히 변화하는 관계, 그리고 성장하고 회복하는 시간들에 주목하는 것이 이 여정의 목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