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제목에 적힌 고양이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영화는 음악가인 모리와 사진가인 마이코 그리고 모리의 옛 연인인 아사코의 일상을 담담히 그리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선문답처럼 던져진 제목이 화두처럼 마음 속에서 맴돈다. 고양이는 무엇이며 왜 놓아준다는 것인지…. 자극적이고 찐힌 맛에 질려서서 녹차처럼 은은한 향과 씁쓸한 여운을 음미하는 편안함에 젖어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기꺼이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영화 첫 30분 동안은 모리와 마이코의 숨 막히는 공간이 무심히도 흘러간다. 햇빛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잡아내는 카메라도, 기타 줄을 튕기며 흐르는 선율도, 두 사람이 만나면 정체된다. 그러다 어느 날 카페에서 모리가 옛 연인 아사코를 재회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다이스케 감독은 이 재회를 통해 우리 일상과 과거의 회상, 무의식 등을 포착한다. 그 방식은 담담하고, 선적(禪的)이다.
모리와 아사코가 동일한 과거 장면을 서로 다르게 회상하는 시퀀스는 감독의 편집 덕분에 기분 좋은 간극을 만들어낸다. 과거 장면에 등장하는 냄새 이야기나 맥주를 마시는 일, 공원을 산책하는 일은 모두 일치한다. 하지만 누가 먼저 상대방을 초대했는지, 누가 먼저 키스를 했는지, 누가 맥주 캔을 건넸는지, 누가 먼저 상대방을 안았는지는 서로 다르게 회상된다.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사코가 ‘기억하기’ 게임을 제안하는데, 이 게임의 목적은 그 과거를 기억하기 보다는 오히려 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사실 여부가 중요한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화자에게 지나간 과거가 어떤 파동을 남기는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두 사람의 재회 장면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의자가 움직이고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진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모리가 일하던 마트의 선반 물건이 쏟아지고 카트가 움직이는 식이다. 일본인들의 삶에서 일상화된 지진이라는 상황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우연이라는 현상으로 그려진다. 일본 사회의 무의식적 불안감을 환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마치 평온하고 단조로운 모리의 일상에 찾아온 균열을 암시하는 복선으로도 읽힌다.
모리와 아사코는 만남에는 늘 걷는 행위가 이어진다. 과거의 회상 장면에서도 걷고, 재회한 순간에도 걷는다. 걸으면서 인물들은 서서히 감각을 회복한다. 걷기는 정체되어 있던 것에 균열을 내고, 인물들에게 새로운 리듬을 환기한다. 아사코는 모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 온 날 오래 전에 그렸던 미완의 그림을 꺼내 화면 속 빈 화병에 꽃을 새로 그려 넣는다. 모리는 마이코의 전시장을 찾아 그들의 기억을 담은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모리와 마이코는 전시장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며, 오랫동안 하지 않던 작업 이야기를 나눈다. 그 길 위에서 둘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서로를 교감하며 생생하고 충만한 감정을 나눈다. 세 인물 모두 예술적 재생산을 위한 에너지를 얻는 듯하다.
다음날 모리가 완성한 곡의 가사는 이렇다.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할까? 그래 모두 내려놓자." 영화 도입부에서 모리의 수첩 속 이 노랫말은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할까? _____"와 같이 빈칸을 남기고 있었고, 이를 마이코가 "그래 모두 내려놓자"로 채워 넣는다. 이 필담은 처음엔 두 사람의 불안함으로 다가왔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함을 불러왔다. 그러나 모리가 아사코와의 재회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 난 후에 이 가사는 오히려 선적인 평안함으로 다가온다.
고양이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목처럼 ‘고양이를 놓아준다’라는 행위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 제스처다. 고양이를 길들이려다 포기해 본 이들은 이 제목에 은근히 미소 지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고양이’는 붙잡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붙잡으려 함으로써 오히려 거꾸로 붙들리게 되는 존재를 의미하는 듯하다. ‘고양이를 놓아준다’라는 행위는 붙잡을 수 없는 대상을 내려놓음으로써 붙들린 마음 자체를 내려놓는 방하(放下)의 제스처로 읽힌다. 그러니 ‘평안함'이 삶의 목적이 아닌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싱거운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떤 일들은,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내려놓아야만 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