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우아한 시체>, 제목부터 난해하다. 놀랍게도 이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우아한 시체'는 초현실주의 기법의 하나로 다수의 작가기 한 작품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한다. 요컨대 제작 형식이라는 것이다. 챕터 하나를 완성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챕터 하나를 완성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이러한 여정 끝에 다다른 영화 위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까?
시작은 귀다. 카메라는 민주(이유하)의 귀를 응시한다. 스크린 가득 여자의 귀가 보인다. 여자는 듣는 일에 예민하다. 그래서 말이 너무 많은 연인에게 헤어짐을 고한다. 받아들이지 못한 남자(손중영)는 구차하게 매달리고 여자에게 상처까지 입힌다. 구질구질함은 극에 달해 장장 8페이지에 이르는 미련을 편지로 전해 여자의 경멸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여자가 편지를 넘기는 속도는 거대한 숫자 자막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재치 있는 장치로 복잡한 연애의 끝을 간단하게 표현한 셈이다.
끝이 있다면 다시 시작이 있다. 민주는 이름도, 나이도, 주거지도, 직업도 알 수 없는 벤이라는 남성과 새로이 만남을 시작한다. 벤은 놀랍게도 실체가 없다. 그러나 둘은 분명하게 사랑하고 있다. 민주와 주변인들의 대화, 민주 홀로 펼쳐지는 끈적한 스킨십들로 어렵지 않게 사랑을 유추할 수 있다. 실체 없는 벤도 민주에게 젤리를 건넨다. 적어도 벤과의 사랑이 민주 홀로만의 망상은 아니라는 듯, 젤리를 받아 드는 민주의 손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이 젤리를 먹는 민주의 모습을 보면 성실한 저작운동과 그녀의 미각이 벤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불분명하고 실체 없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안정적인 선택은 아닌 셈이다.
민주가 안정보다 불안정한 선택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는 플래시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몇 단어에 지나지 않을 심리학 용어로 간단히 설명될 계기는 아주 느린 호흡으로 느긋하게 설명된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제야 벤의 실체를 약간이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불안정한 선택을 한 민주가 맹신에 가까운 사랑을 쏟아부은 결과 실체를 확인하고 존재를 인식했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할 뿐이다.
<우아한 시체>는 참신한 실험의 연속이다. <우아한 시체> 기법도, 실체하지 않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미지의 존재도. 극한에 치달은 특수한 설정은 기나긴 여정을 고행으로 변모시킨다. 신기하게도 그 고난의 길 위에 펼쳐지는 것은 사랑이다. 특수한 설정 위에 보편적인 로맨스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나름의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난해함마저도 품는 것이 사랑의 본질일 테니까. 그러나 관객도 그 같은 관대함을 가지고 영화 속 화학 반응에 공명할지는, 모를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