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철들 무렵> : 삶이 어깨를 짓누를 때

By 박태향

 보통 우리나라 독립영화를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다. 대개 어둡고 대사는 별로 없어 불친절하고 무겁다는 인상이 강해서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색이 밝은 영화를 고르려 하는데 역대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영화 중 구상과 전개가 발랄하고 기발했던 '매기', 유쾌했던 '찬실이는 복도 많아', 창의력이 퐁퐁 샘솟듯 한 '막걸리에게 물어봐'가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다.

 

 시놉시스에 위트와 재치를 곳곳에 볼 수 있다는 문구가 나를 이끈다. 아니! 이 '철들 무렵'의 감독은 젊은 나이에 이 무거운 제재를 이렇게도 능청스럽고 여유있게 풀어내네. 그것도 단일한 시선이 아니라 구순의 할머니 세대부터 노년에 접어든 자식들, 손녀, 자식의 손자 세대까지 4세대를 아울러 시대의 어둡고 아픈 역사까지 한층 한층 얹어낸다. 밝은 미래를 꿈꾸기엔 현재의 무게에 쫓기고 지치는 청년의 고단하고 지친 현실에서도 극 전체 분위기를 무겁지 않게 위트와 유머로 버무린 감독의 각본과 연출은 우리에게 경쾌하면서도 맛깔진 만찬을 한 상에 잘 차려 맛보게 한다. 여러 가지가 정갈하게 놓이면서도 각각의 맛을 잘 살린 솜씨는 넉넉하고 능청스런 여유가 느껴지기까지 하다.

 

 감독은 가족의 간병을 할 때 자신의 어깨에 지워졌던 피곤과 짜증, 쫓기는 듯한 분노를 느끼며 가족 안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 질문을 하게 된 것이 시나리오 작업의 계기라고 하였다. 단순히 나이든 부모가 병에 걸렸을 때 자식이 지게 되는 경제적 부담과 육체적으로 고단한 간병만을 다루었으면 평면적이고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여러 상황 속 유머는 감초처럼 적당히 톡톡 녹여져 있다. 각본을 쓴 이는 원래 유머가 많은 사람이겠구나 단정 지을 정도로.

 

 정미는 단역배우로 여러 오디션에 다니며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고 있다. 부모는 20년 넘게 따로 살고 있다. 엄마는 공직자로 퇴직연금을 받으며 편히 사나, 아버지는 노동자로 흉선암 말기를 진단받는다. 이제 정미는 자신의 꿈을 좇아 살기에도 버거운데 아버지 간병까지 맡게 되었다. 정미의 친가와 외가 가족들의 상황이 곁가지로 연결 확장되며 간병, 부양, 손자 돌봄 등 현실의 소재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부녀간 대화나 병원에서나 구순의 할머니 부양을 넌즈시 혼자 편히 사는 정미 엄마에게 맡기려는 형제들 간 대화까지 대사와 분위기로 내내 관객을 웃게 만든다. 이 점이 정미 역의 하윤경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으며 울다가 웃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꼭 이 배역이 하고 싶었다고 GV에서 밝혔다.

 

  영화 속 다양한 세대의 인물들이 성장한 과정, 시대적 아픔,현실을 군더더기없이 보여주고 들려줘 여러 겹의 페스트리를 맛보듯 만든 이 작품에서 구순의 할머니가 다니는 독서모임에 낭독하는 문장은 박완서의 소설로, 할머니가 살아왔던 시대를 들려준다. 맑은 눈과 표정으로 어른들을 바라보는 정미 큰아버지의 손자까지 4세대 층위로 나눠 여러 인물들의 상황,심리를 카메라는 여유있는 유머로 찍고 대사는 능청스럽다. 여기에 연기력까지 받쳐주는 배우들이 더해 현실감을 온전히 보여주면서도 무겁지 않다. 인물들은 생동감있게 살아 있다. 영리한 구성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상황과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네 삶에서 철들 무렵은 언제인가? 가족이 내 어깨에 부려놓은 짐이 무거울 때 나의 선택은? 가족 관계 안에서 나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려면 어느 선까지 그 짐을 짊어져야 할까? 일본의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은 보는 사람이 없다면 슬쩍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다'라고까지 말했다. 웃음으로 포장했으나 영화를 보고난 후 우리의 대화를 풍부하게 할 영화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와 지난 과거를 연결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 중 구순의 할머니가 주체적인 미래를 그리는 게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 모든 것들을 능숙하게 풀어낸 감독의 솜씨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며 차기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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