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누군가의 일생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는 흔치 않다. 혹여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우리는 쉽게 잊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무감각해질 때가 많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의 일생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의 삶은 마치 잊히지 않는 화양연화 같았고, 조금이라도 잊고 싶지 않아 다시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설령 그 일이 세 시간이 걸린다 해도 말이다.
영화 <국보>는 ‘가부키 온나가타’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배우 키쿠오의 삶을 조명한다. 어린 시절부터 국보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을 따라간다. 대부분의 관객은 가부키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고, 온나가타라는 존재 자체를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사실에 주눅 들지 않는다. 간단히 정의만 짚은 뒤 곧장 관객을 온나가타의 세계로 이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자연스럽게 납득하거나 매료료 된다.
이 영화는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은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영화가 마치 기차처럼 키쿠오의 인생을 따라 질주하는데, 그 흐름 속에서 관객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불필요한 설명은 영화의 결을 단조롭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자기 이야기만 고집해 관객을 배제하는 영화도 많다. 그런 점에서 <국보>는 말을 아끼면서도 깊이 설명하는, 드물게 탁월한 영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등장 분량에 비례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인물조차, 그가 살아온 삶과 품은 감정을 관객이 상상할 수 있도록 세심히 설계되어 있다. 덕분에 작은 역할에서도 다층적인 삶의 결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특정 인물을 편애하기 위해 다른 인물을 소모하지 않는 점이 인상 깊다. 주인공 중심의 영화일수록 편애가 당연해지는데, <국보>는 그 당연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키쿠오의 삶은 환원적이다. 그래서 영화가 왜 세 시간이어야 하는지 관객을 납득시킨다. 키쿠오의 인생을 납득하는 순간, 영화 자체를 납득하게 된다. 영화가 세 시간을 빼앗아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오히려 관객이 수긍하는 일은 얼마나 큰 힘인가. 그 경험은 다시금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나는 많은 이들이 ‘ 세 시간’이라는 시간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이 글을 쓰며 영화를 가능한 한 감추려 애썼다. 그러나 배우의 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김혜자 선생님이 “연기를 너무 잘하면 징그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국보>의 요시자와 료의 연기를 보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절실히 깨달았다. 보는 내내 몸이 간질거릴 정도였다. 아마도 그 한마디로 그의 연기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보>는 재밌는 영화다. 키쿠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고 즐거웠다. 그 이후의 삶까지 보고 싶을 만큼. ‘가부키 온나가타’, 그 아름답고도 슬픈 세계를 더 많은 이들이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국보>가 더욱 풍성하게 즐겨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