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올림픽의 열기가 가득한 파리에 도착한 블랑딘은 첫 번째 경기 입장에서부터 입구 컷 당한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커다란 백팩 때문이다.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한 채 짐부터 내려놓기 위해 호스텔을 찾아가려 하지만, 과연 파리 시내에 숙소가 있긴 한 건지 가는 길 또한 천리만리다. 영화 <여름의 랑데뷰>(발렌틴 카디크, 2025)의 오프닝에서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올림픽, 여자 혼자, 어리버리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몇 시퀀스가 지나면 입구 컷 당한 저 경기가 블랑딘이 가진 유일한 티켓이었음을 알게 되고, 또 몇 시퀀스가 지나면 블랑딘이 그 경기에 출전하는 수영선수의 팬이었기에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티켓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몇 시퀀스가 더 지나면 그 누군가가 아마도 전 연인이었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이렇듯 이 영화는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마치 양파 까듯이 하나씩 관객들에게 쥐어준다. 말 그대로 불친절하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 쥐어준다. 이 과정이 꽤나 순차적이고 친절하기 때문에 영화를 잘만 따라가면 우리는 블랑딘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블랑딘이 카페에 앉아 카를린이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썼다 지운다. 내용을 보자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를 향한 것인지, 멀리 떨어져있는 연인에게 쓴 것인지, 헤어진 연인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잠시 뒤 조카 알마와의 공원씬에서 알게 된다. 편지 속 카를린은 헤어진 연인이며, 어떠한 이유로 헤어졌는지까지 관객들은 들을 수 있다.
이렇듯 영화는 7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효율적으로 떡밥을 던지고 빠른 시간 안에 회수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다보니 허투루 지나가는 대사가 없는 느낌이다. TV에서 아나운서가 ‘베릴 선수의 하루에는 루틴이 있죠. 새벽 훈련을 하고 개를 산책시키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흘러가듯 나온 대사도 추후 떡밥 회수를 위한 포석이랄 수 있다. 마치 시나리오 작법 교본을 충실히 따른 모범생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흥미롭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건 영화가 점차적으로 블랑딘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과정이, 영화 속 블랑딘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을 배경에 두고, 블랑딘이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여정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격인데, 축제와 자아찾기가 어울리나 싶다가도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올림픽이든, 영화제든,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축제라 해도 결국 그 축제에서의 경험은 다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응원하는 나라 또는 선수가 다르고, 각자가 보고 싶은 영화가 다르고, 그 영화를 본 감상이 다르고, 나의 영화적 체험(혹은 감상)은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랑딘이 찾아가는 자신의 세계는 영화의 방식처럼 미괄식이다. 10년 만에 만난 이복언니 쥘리, 그녀의 딸 알마, 쥘리의 전남편 폴, 수영장 전기기사 뱅자맹 등 여러 인물과의 만남을 거쳐 블랑딘은 자신만의 답을 찾고, 영화는 순차적인 떡밥 던지기와 회수를 지나 (어쩌면 블랑딘에게 가장 중요할) 피아노와 바다를 가장 마지막에 배치시켜 보여준다. 센강 다리에서 인터뷰어의 질문에 온갖 tmi를 남발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왜 베릴 선수를 좋아하는지는 생략하고, ‘그녀는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죠’라 말하던 블랑딘이 다른 이가 아닌 자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말하게 되기까지, 그 여정을 보는 것이 즐거웠냐 묻는다면 그렇다 답할 것이다. 올림픽 시즌 파리까지 간 블랑딘은 고생스러웠을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