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것은 좋지만은 않다. 존중과 차별의 이중적인 시선이 공존한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멀쩡해 보여도, 집에 돌아오면 발뒤꿈치는 고통에 짓눌러 피범벅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며 사랑받을 수 있긴 한 걸까.
지하철에서 한 남자, 세오가 서있다. 곁에는 비싼 캐리어가 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대뜸 호소하기 시작한다. 잡상인, 구걸자, 정신이상자가 타고 내리는 열차라 세오의 외침에 승객들은 큰 관심이 없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건장한 청년이지만, 피부색만으로 늘 오해받아 왔다. 외국인이라 쉽게 단정을 짓는 사람들에 꽤 지쳐있다. 놀이동산에서 호랑이 가면을 쓰고 일하는 동안은 자유롭다. 기어다니면서 동물 소리를 내고, 아이들도 경계심을 풀고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가면을 쓴 뒤에서야 숨을 쉴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잠깐일 뿐이다. 본인을 증명해야 하거나 숨어서 표현하는 줄타기에 세오는 아슬하게 서 있다.
세오의 캐리어는 명품 브랜드 상품이다. 일반 캐리어보다 열 배는 비싸고, 선망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워낙 시장에 가품이 많기도 하지만, 세오가 들고 다닌다는 이유로 쉽게 의심받는다. 불편한 캐리어는 왜 구매했고,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으며, 끝까지 소지하는지 궁금해진다. 자신과 여행을 함께하면 이를 통째로 주겠다고 공공연하게 선포한 세오 앞에 소라가 나타난다. 관심 끌기에 성공한 거라기엔 소라는 공장형 명품에 큰 관심이 없다. 소라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식탁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남들보다 깊은 이해와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나무 선별, 다듬기, 형태 완성까지 일련의 제작 과정에서 오는 숱한 기다림을 반복해 왔을 것이다. 본인의 가치를 스스로 알고 타인에게 쉽게 기대지 않았을 소라는 그저 세오 하나만 보고 여정을 시작한다.
함께 떠나는 여행이지만, 서로 로맨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완전한 우정으로 결합한다. 사랑이란 결과에서 각자 도달한 의미가 있다. 세오는 뿌리의 사랑을, 소라는 지나간 동성 연인의 사랑을 느낀다. 지금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살아오기까지 묵묵한 사랑이 존재해 왔다. 색안경을 낀 타인의 시선은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온전한 혼자의 몫이겠지만, 상처가 난 자리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따스한 여유로움은 공유할 수 있다.
그들의 여정 끝에 짓눌러왔던 편견의 무게가 처음보다는 가벼워졌겠지만, 살아있는 한 사람들과 부딪치고 계속 만날 것이다. 지금의 상처가 아물고 흉이 지더라도 같은 자리에 더 아프게 덧날 수도 있다. 또다시 쉽게 치유와 고뇌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인정하면 된다. 지나온 사랑을 상기하고, 계속해서 사랑을 탄생하고 공유한다면 언젠가 찾아올 언덕에 영원히 쉴 수도 있다. 사랑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어떤 지점에 도달해야 힘겹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바로 여기서 사랑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