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영화는 정갈하게 관리된 단독주택을 비추며 시작한다. 춘희는 그 앞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사를 준비하고 이사한 아파트에서 지휘자 민준과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성찬이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시간을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는 모두의 여정은 음악이 흐르며 펼쳐진다. <흐르는 여정>은 각자 녹녹지 않은 현실과 고민을 가진 인물들이 행복을 향하여 어떻게 나가는지를 그려낸다.
영화에서 집과 자동차는 본래 가진 기능에서 더 나아가 안온한 삶 그 이상을 위한 공간으로 확장된다. 조금만 관리하지 않아도 먼지가 쌓이기에, 춘희는 집과 자동차, 피아노를 정성스레 닦아 ‘살아 있게’ 한다. 춘희의 애정 어린 관심과 배려는 다른 인물들도 공간을 재감각하게 한다. 남편이 지은 단독주택은 민준과 성찬의 방문으로 새로운 추억이 더하여지고, 적응이 어려웠던 아파트는 배려와 이해, 소통의 장이 된다. 자동차는 쉬이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고 새로운 여행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음악은 인물들의 정서를 표현하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매개체로 쓰인다. 민준의 아파트에 놓인 춘희 남편의 그랜드 피아노는 성찬이 연주하게 된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은 관객들이 더욱 몰입하게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서사의 중요한 장치로도 활약한다. 인물들이 음악을 감상하고 연주할 때, 숨겨둔 감정과 생각이 드러나고 갈등이 해소되며 감정은 전이된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유려히 흐르는 선율은 인물의 연대를 넘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인다.
영화는 춘희와 춘희의 진심에 마음을 여는 여러 인물의 현실을 드러내며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지만, 과연 이러한 권리는 지켜지고 있을까. 영화는 각자의 행복과 이를 추구하는 마음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각자의 고민과 겪고 있는 고통, 편견을 극명하게 드러내거나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과 결정을 조명하지 않는다. 다만, 계절이 흐르고 인물들이 함께한 시간과 감정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마음과 연대에 시선을 둔다.
사용할 수 없었던 피아노에 선율이 흐르고, 움직일 수 없었던 자동차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 인물들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엄마가, 누군가에게는 할머니가 되어 준 춘희는 성찬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응원의 말을 건넨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하여 내린 선택은 그것이 내가 그 사람에게 바라는 방향이 아니라고 해도 응원과 지지를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관객은 이들의 여정을 따르며 소소하게 웃고 감동하고, 종국에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대한 묵직한 물음에 대한 자신의 답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