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김덕중 감독은 영화 <에듀케이션>(2020), <컨버세이션>(2023) 등으로 관계 맺기의 복잡성과 균열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그의 영화는 늘 일상의 순간에 담긴 대화와 침묵, 긴장과 해소의 미묘한 리듬에 집중하며 인물 사이의 진솔하면서도 때로는 엇갈리기도 하는 소통을 그려왔다. 피터 위어의 영화 <트루먼 쇼>(1998)의 SF적 설정을 차용하고 확장한 이번 영화 <트루먼의 사랑>은 여전히 전작에서 보여준 불완전한 소통을 그리면서도 소외와 고독 속에서 진실한 연결을 갈망하는 청춘의 얼굴을 함께 포착한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 남자는 그녀에게서 믿기 어려운 말을 전해 듣는다. 가끔 세상은 ‘에러’를
일으킨다고. 그 에러가 일어날 때면 사람들은 눈을 깜박이거나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다가 이내 시간이 멈춰버린
듯 가만히 있는다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의문의 소리가 울리면 다시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그녀는 자신이 그런 세상의 에러를 감지하는 ‘트루먼’이라고 소개한다. 고장
나버린 사람들 틈에서 혼자 남았던 그녀는 고독을 홀로 감내하다 이제는 자신과 같은 트루먼들을 찾아다닌다고도 말한다. 남자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9개월 후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도 그녀가 찾던 트루먼이라
여기게 된다.
<트루먼의 사랑>은
영화 <트루먼 쇼>와 같이 자신이 조작된 세계의
일부임을 자각한 주인공을 내세운다. 다만 <트루먼 쇼>는 거대한 세트장의 진실을 깨달은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가 조작된 세계를 벗어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그렸다면, <트루먼의
사랑>은 바깥 세계로 향하는 탈출보다는 그 세계 안에 머물면서 또 다른 ‘트루먼’과의 연결과 동질감을 통해 현실의 공허함을 견뎌내는 서사에
가깝다. 즉 외부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지의 세계와 존재의 불확실성,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의미를 옮겨간다. 나아가 영화는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동질감이 중요한 세계일지라도 끝내 무조건적인 믿음이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영화 속 세 명의 인물이 부유하는 모습은 청년 세대의 녹록지 않은 삶을 비추기도 한다. 청년 공간의 운영 방향에 대해 토의하는 장면은 ‘카공족’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고, 현대에 대두된 다자간 연애 폴리아모리, 자기계발과 취향 공유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청년들의 모임 문화까지 현실의 다양한 양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러 문제에 피상적으로 접근하며,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산발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영화는 시종 청년들의 현실을 모방하고 있지만, 창작자의 자의적 사고를 통해 걸러진 작위적인 세계로 비치기도 한다. <트루먼의 사랑>이 그려내는 폐쇄적인 세계는 하나의 디오라마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