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흐르는 여정> : 작은 순간들이 만드는 큰 울림

By 박수완

김진유 감독의 영화 <흐르는 여정>은 거창한 사건보다는 삶의 작은 순간에 주목한다. 상실을 경험한 인물들이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기댈 자리를 마련하며, 혈연이 아닌 관계로 맺어진 유사 가족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들은 함께 식사하고, 음악을 나누며, 소소한 일상에서 서로의 곁이 된다. 그 과정은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은 대단히 단순하다. 마주 앉아 식사하고, 연주를 듣거나, 짧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런 일상의 순간들이야말로 영화적 순간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꿈꾸는 삶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앉아 마음을 나누는 평범한 시간이 아닐까. 영화는 관객에게 이 질문은 조용히 건넨다. 

 

음악은 영화의 핵심적인 매개다. 피아노와 지휘, 연주라는 요소들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언어로 작동한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감정을 음악은 대신 전해주며 상실의 공허를 채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연주의 순간은 이들이 새로운 가족으로 묶어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감독은 음악을 배경이나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물 관계의 본질적인 흐름으로 삼았다. 그래서 영화의 리듬 자체가 음악처럼 느껴진다. 서정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며 가끔은 울림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음악적 흐름과 유사 가족의 탄생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오가며 그려진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쉽게 만들어지기 힘든 관계일지라도 영화 속에서는 그것이 아름답게 가능해진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인생의 순환 속에서 잠시라도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세상의 한 단면이다.

 

영화의 공간 역시 이를 상징한다. 오래된 집과 새 아파트, 그 사이를 오가는 피아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 과거의 흔적을 품은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하는 과정은 단순한 생활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의지의 표현이다. 피아노가 다른 이의 집에 놓이게 되는 설정 역시 단절된 삶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공간과 물건, 음악과 사람이 얽히며 새로운 관계망이 형성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영화가 제시하는 여정의 풍경이다.

 

<흐르는 여정> 결국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려는 영화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종종 고립되고, 상실을 마주하고 관계의 단절을 경험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세계가 존재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멀리 있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웃음, 피아노 앞에 앉아 건네는 시선, 함께 걷는 발걸음 같이 소박한 순간 속에서 발견된다. 카메라는 순간들을 조용히 포착하며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많은 성취와 소유가 아니라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는 누군가의 곁이 아닐까.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한국수력원자력㈜
뉴트리라이트
두산에너빌리티
OB맥주 (한맥)
네이버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