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단잠> :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같은 길이를 지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By 전세현

 시간은 규칙처럼 객관적인 것,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따져보면 각자의 1년이 같은 무게를 지닌 것은 아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어떤 과거는 어제처럼 느껴지기도, 실제 지나간 시간보다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치유의 힘을 가지더라도, 한 사람이 치유에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타인이 지레짐작할 수는 없다. <단잠>에서 자주 나오는 대사가 있다. 3년이나 지났다는 말이다. <단잠>의 주인공인 인선과 수연은 모녀 관계이다, 둘의 남편이자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는 그로부터 3년 뒤를 다룬다. 수연은 아직 아버지의 유골을 바다에 보내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어머니인 인선 역시 그의 유골을 보내주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그들에게, 사람들은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말은 때때로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년은 정말 긴 시간일까? 그동안 인선과 수연은 치유가 됐을까? 영화에선 이미 죽은 존재인 남편이 자주 나온다. 그것은 현재에서 하는 상상이기도, 과거 회상이기도 하다. 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나와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과거 회상에서는 화면의 색감이 달라지거나 인물의 외양이 바뀌는 등 과거라는 걸 알려주는 표지는 없다. 이렇든 과거와 현재는 자주 섞인다. 마치 그가 아직 현재에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상실의 슬픔은 일상에서 갑작스레 덮쳐온다. 다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아주 사소한 하나에 집어삼켜져 다시 허우적대기도 한다. 상실은 쉽게 과거라는 이름으로 소화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는 남편의 등장 방식처럼, 인선과 수연은 아직도 그를 과거로 정리하지 못한 것만 같다. 그의 상실에서 오는 아픔은 아직도 인선과 수연에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것처럼 보인다. 남들이 보기엔 긴 시간인 3년은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시간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아버지의 유품인 멈춰버린 시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연은 그것을 들어 귀에 가져다 대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의 시간은 당연하게도, 멈춰있다. 반면, 인선과 수연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그들이 비춰질 때 시계 초침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나중에 수연은 아버지의 시계를 수리점에 맡기고, 그것은 수연의 손목 위에서 다시 흐른다. 아버지는 명백히 과거의 존재이고, 그는 더 이상 시계 초침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에 반해 살아있는 이들에게 시계 초침 소리는 계속해서 들린다. 인선과 수연의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그것이 잃어버린 이를 잊고, 상실을 온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보이진 않는다.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은 살아있는 이들의 삶 위에서 함께 흐를 것이다.

 

 소중한 이가 사라지는 일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으레 극복될 일이라 여겨진다. 말은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픔이 온전히 사라지진 않을 테고, 나아지는 데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상실의 아픔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속에서 그나마 괜찮아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타인이 속단할 수는 없고 오래 걸린다고 질책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단잠> 보고 이후, 상실을 겪은 이를 이해하려 들고 가르치려 들기보다 아무 없이 옆에 앉아 함께 파도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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