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3년 전, 인선은 남편을, 수연은 아버지를 잃었다. 3년이 지난 현재, 두 사람은 아직, 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아픔을 겪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두 인물의 성격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영화는 두 사람이 주로 지내는 곳이 어떻게 두 사람에게 다른 생각을 하게끔 했는지 보여준다.
인선은 동해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하고 있다. 한편, 수연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수연은 기일이 되면 동해로 돌아오는 사람이고, 인선은 동해에서 사는 사람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수연은 내면적으로는 아직 죽은 아빠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지 못했을지라도, 물리적으로는 이미 아빠의 공간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인선은 동해에 사는 사람이다. 영화 속 대사들로 짐작건대, 동해는 남편의 고향으로 보인다. 그녀가 산책을 나간 바다는 남편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주 놀던 곳이고, 집 안에는 여전히 남편의 유골이 있다. 인선의 입장에서 동해는, 어디를 가도 죽은 남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 영화는 2.35:1의 화면비로 보인다. 그리고 카메라는 인물들을 타이트하게 잡는 경우가 거의 없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올 때도 카메라는 넓은 화각을 통해 두 사람과 그들의 주변 공간을 바라본다. 어쩌면 그 공간 안에 두 사람이 들어온 것일 수도, 공간이 두 사람을 옥죄어 오는 것일 수 있다. 공간 속 기억이 사람의 마음을 옥죄이자, 영화에서는 어떤 초현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인선은 이런 상황에 놀라거나 낯설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해 보인다. 오래전부터 이 현상을 겪은 것일 수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은 타인이 아닌 본인의 일부로 인식이 된다고 한다. 인선에게 남편의 죽음은 곧 본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한 고통과 허탈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은 남편과 관련된 현상을 오랜 시간 겪어왔기 때문에, 숨 쉬며 살아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자, 계속해서 살아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남편과 공간적으로, 초현실적으로 함께 있는 인선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인선에겐 힘겨워 보인다. 그 때문에 그녀의 행동은 역동적이거나 힘이 넘치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인선이 겪는 모든 일은 수연이 짊어지게 된다. 수연도 인선처럼 동해에서, 동해에 있는 집에서 어떠한 현상을 본격적으로 겪기 시작한다. 동해의 거친 파도가 몰아치지만, 집은 파도를 막아주지 못한다. 오히려 파도가 되어 같이 수연을 덮친다. 이에 수연은 인선과는 다르게 동해에 머무르면서 고통받는 것을 거부한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알 수 없다.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만 관객은 확인하게 된다. 수연의 삶의 시계가 고쳐져서, 앞으로도 그녀의 시간이 흘러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