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철들 무렵> : 그 무렵은 모호하다

By 임채린

무렵은 대략 어떤 시기와 일치하는 즈음이다. 지나고 나서야 그 시기가 다른 시기로 넘어가는 과정이었음을 짐작해 볼 뿐. 어떤 시기라고 정확히 짚을 수 없는.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시간.

 

영화 <철들 무렵>은 90살의 노모부터 유치원생 조카까지 대가족을 가져와 그즈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양’이라는 문제와 마주한다. 재치 있게 서로의 말을 맞받아치는 대사처럼 부양 문제도 그들의 사이를 유머러스하게 오간다.

 

배우 지망생 정미(하윤경)는 암 판정을 받은 철택(기주봉)을, 철택과 사실상 이혼한 현숙(양말복)은 구순의 노모를 돌봐야 한다. 부모와 자식이기에 그들은 어딘가 비슷하다. 철택과 정미는 모아둔 돈 없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상황도, 유머러스한 말투도 호탕한 성격도 닮아있다. 카메라는 거울을 통해 닮은 이들을 비춘다. 철택을 태우고 병원 가는 길에 정미는 자동차의 룸미러를 통해 그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또한 병실에서 싸우는 철택과 정미의 모습을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비춘다. 닮아서 더 다투는 걸까.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싸우는 듯, 서로에게 투영된 나를 보여준다.

 

하지만 닮은 얼굴들이 낯설어지는 때가 있다. 철택과 정미가 울분을 토하며 싸운 날은 서로 마주 보고 잘 수 있지만, 이불에 실수한 철택을 씻긴 날은 어색해 뒤돌아 눕는 그런 순간. 나의 보호자였던 그를 내가 보호해야 하는 순간. 바뀐 위치에서 낯섦을 느낄 무렵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

 

낯설고 어색한 순간이 지나가면 우리는 철이 들까? 철택은 여전히 아픈 와중에도 복권을 찾는 철부지 아버지이다. 정미도 매한가지다. 아프다고 곡소리 내는 철택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래를 뱉어야 한다며 그의 등을 있는 힘껏 내리치는 철모르는 딸내미이다. 하지만 복권 당첨 계획을 말하는 그들 사이로 새로운 교집합이 생긴다. 그 계획은 철택이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한 욕망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부모로서 자식에게 가지고 있었던 미안함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가 지닌 욕망을 마주하고, 과거의 감정을 씻어낸다. 그렇게 인물들은 부모이기에 또는 자식이기에 가져야 했던 속박의 껍질을 한 꺼풀 벗어낸다.

 

철들 무렵. 우리는 이 변곡점을 어떻게 지나가고 있을까. 정미가 오디션을 보러 간 장면이 생각난다. 다가오는 순서를 기다리는 친구가 긴장된다고 하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라고 한다.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는 지원자들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우리. 너와 내가 맞닿아 있는 지점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들. 어쩌면 당신이 지나왔던 자리는 내가 지나가야 할 자리고, 내가 있는 자리는 당신이 있었던 자리이기에. 그런 때가 반복되는 순간들이 우리가 그 무렵을 지나가고 있는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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