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MBTI가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가기도 훨씬 전 키르케고르 할아버지는 인간을 윤리주의자와 미학주의자 두 부류로 나누셨다. '윤리주의자는 의무 완수를 삶의 목표로 삼고 거기에서 삶의 행복을 이끌어내지만, 미학주의자는 신뢰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순간순간의 기분 속에서 내키는 대로 살아간다. 윤리주의자의 최고의 이상은 삶의 균형과 균일함과 지속성이지만 미학주의자는 순간의 섬세함과 예측불허의 경지를 사랑한다. 전자는 정신에 후자는 감각에 중점을 둔다. 간접성과 직접성, 성찰과 도취, 규율과 해방의 삶으로 서로 대립한다'라고. 그러니 내가 굳이 <철들 무렵> 속, 로또에 온 잉여력을 쏟아붓는 아버지 철택을 변명하자면, 철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미학주의자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무언가에 계속 쫓기는 삶을 살았고, 로또를 사는 이유가 쫓기고 싶지 않아서라는 철택의 말에 십분 공감이 되어서다.
급격한 자본주의 성장 사회에서 지금의 중년 세대들은 모두 윤리주의자가 될 것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그건 자본주의를 충실히 신봉하는 사람들이나 그 반대편 상황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윤리주의자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철이 안 든 사람’으로 취급 받았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 세대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금의 젊은 세대와 아버지 세대, 그리고 아버지의 부모 세대까지 각 세대가 놓인 상황을 들여다본다. 지금처럼 세대 갈등이 심한 시대에 도대체 이 ‘삼대’를 모두 모아 놓고 감독은 무얼 하려는 걸까? 일단 폭소를 만들어내는 지점들이 절묘하게 이어지며, 진지한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유머는 그 무엇을 웃음으로써, 우리는 그 무엇을 넘어서게 되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내가 부모와 겪게 될 모습이고 내가 자식과 겪어야 할 갈등이고 보면, 그 유머의 확장성은 더욱 넓어진다. 부모와 자식을 모두 부양해야 하는 책임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니 말이다.
암 4기 판정을 받은 철택, 그리고 그를 간호해야 하는 정미, 침대에 똥을 지린 철택을 씻기는 정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샤워기를 든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기에 애써 고개를 돌리고, 아직 결혼도 안 한 딸에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철택은 민망함에 안절부절못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장면들이 추하지만 추하지 않다. 그건 바로 유머가 있어서다. 현실의 고달픔이 너무 분명할 때 그 고달픔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방법으로 유머는 매우 적절한 방법이다. 이렇게 이 작품에 흐르는 유머는 감독의 통찰력에서 시작해 따뜻한 시선으로 옮겨가 우리네 삶의 고달픈 현실을, 결코 버릴 수 없는 현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왜 이렇게 철이 없냐' 있는 척 꾸짖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철이 안 든 게 아니라 그저 미학주의자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