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어느 매체에서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를 최초의 인문학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했다. 최정단 감독은 오직 이 영화를 위해 회사를 차리고, 21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었다. 출발은 강연 아카이빙 때문이었지만, 선생의 보석 같은 말씀들이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고 감독은 말한다.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김우창 선생은 2018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 학회인 아카데미아 암브로시아나 정회원으로 선정되었고, 2022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인문학의 거목이다. 문학과 동서양 철학뿐 아니라, 과학·정치·예술 등 사유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피에르 부르디외, 오에 겐자부로 같은 세계적 사상가들이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화는 선생의 학문적 성과에 기대지도, 교술적 성격을 띠지도 않는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한 인물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영화를 통해 김우창이란 사람이 궁금해진다면, 그것은 선생의 학문적 깊이 때문이 아니라 한결같은 사유의 태도 때문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비슷하게 그려낸 의도도 그러할 것이다. 굵은 눈발이 내리는 아침, 가파른 계단 위 현관문을 여는 한 노인이 있다. 자신이 디딜 계단 하나하나의 눈을 쓸며 조심스레 마당에 내려선다. 눈 쌓인 나뭇가지는 무겁게 길을 방해한다. 눈을 털며 대문 앞에 이르러 신문을 집어든다. 논조가 다른 세 종류의 신문을 들고 계단을 올라 서재 책상에 앉는다. 이어지는 설경 속에는 상록수가 의연히 서 있고, 바다는 수많은 눈발들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 대단한 볼거리 없이도 관객은 숨죽인 채, 그가 40년을 오르내린 계단을 함께 내려서고 또 오른다. 겨울에서 시작한 영화는 그의 집 정원에 핀 붉은 꽃을, 그 꽃이 져서 붉게 수놓은 마당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담더니, 다시 겨울이다. 노인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눈을 쓸고 신문을 집어들고 서재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겨울나무를 거쳐, 처음보다 더 강한 폭설 내리는 검은 바다를 펼치며 영화는 끝난다. 자연이 순리대로 흐르는 사이, 선생의 일상도 그와 같이 흐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제자에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스승은 대답한다.
실존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면 보통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선생이 주도했던 문학 포럼이나 독서 모임 영상, 해외 방문, 미국 이민 등 기록 자료들이 영화 중간에 삽입되지만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 혼란스럽거나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려 애써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떤 순서이건 상관없다. 선생의 사유는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건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같은 가방을 들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삶이 그대로이며 선생의 사유가 흔들림이 없으니 사실적 정보가 어느 순서에 오건 상관없다. 아무렇게나 쌓인 책들, 오래된 사진들, 천장 여기저기에서 새는 물을 받아내는 대야들, 실밥이 나풀거리는 소파, 소매 끝이 해진 양복 등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물들이 그대로 미장센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진실과 리얼리티를 찾으려 한다면 영화가의 훌륭한 신념과 우리 자신의 건강한 회의주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토마스 소벅 외,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애썼다. 노학자의 일상은 영화를 위해 선택되고 가공되었겠지만 진실하다. 그것이 피사체에 대한 감독의 애정 덕분이건 신념 덕분이건, 관객에게는 좋은 영화와 함께한 좋은 시간이 남는다. 말없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 바다처럼 담담한 선생의 시간도 그렇게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