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스틸 라이프>의 배경이 되는 산샤댐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인공 프로젝트로, 수백만 명이 이주하고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가 물에 잠기는 변화를 담고 있다. 도시는 터전을 잃고 흩어지는 사람들의 이별이 가득한 곳이 되었고, 감독은 이를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렇게 모든 인공적인 것들이 변화하는 곳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자연이다. 오래된 지폐 속 산샤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철거되어 급격히 변화하는 인공의 도시와는 달리 자연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곳의 사람들은 무엇인가와 끊임없이 이별하지만, 인간이 일으킨 변혁이 아무리 혁신적이라 해도 산샤의 무심한 자연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별이 참 힘든 사람이다. 다가올 날을 기대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살아온 날들을 신기한 듯 헤아려 보는 사람이었다. 뒤돌아보면 이별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젊음과는 매일 멀어졌고, 누군가에게 느꼈던 감정과 꿈꾸던 무언가는 내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 갔다. 세상이 아무리 크다 한들, 티끌 같은 내 존재가 느낀 티끌 같은 이별과 마음의 상처들은 그 어떤 우주보다 크고 아팠다. 영화 속 산샤의 현실적인 풍경이 계속되던 와중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구체적인 묘사는 생략하겠지만,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몇 초간 믿기지 않는 충격을 느꼈다. 그 장면은 순간적인 충격을 주지만, 이어져 오던 질서에서 벗어난 모순적인 장면으로 인해 오히려 환기와 이완감을 선사한다. 그 작은 일탈에 나는 숨통이 트였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이 독특한 장면에서 나는 어느 곳에서나, 그 지역성과 시대적 상황을 초월해 발현되는 무언가를 상상했다. 감독은 그 장면을 우산 지역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산 지역은 비가 자주 오고 신비로운 신화가 내려오는 고대 도시였고, 그것이 한순간에 폐허로 변한 광경이 감독에게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졌기에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나는 초현실성이란 무너진 폐허의 돌무덤을 비집고 고개를 드는 그 장소에 깃든 영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시적으로 인지하는 세계 안에 있는 본질적인 흐름이 인공적이고 급작스러운 변화 앞에 당황한 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가시적인 세계 안팎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단단히 버티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작은 내 존재에 위안이 된다. 스스로 약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내 존재가 그 거대한 힘의 일부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지아 장커 감독이 영화 내내 그려낸, 무언가를 나누고 끊임없이 서로를 얼싸안고 보듬는 생명력 강한 사람들처럼 우리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고, 산샤 철거 현장의 그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 중 일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