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52년 동안 일본 사이타마 시 시민들의 기쁨이 되어주었던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이 2023년 문을 닫았다. 오타 신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누마카게 시립 수영장>은 폐장 전의 49일부터 마지막 개장의 날, 그리고 수영장이 철거되는 순간까지를 기록한다.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여기 드나든 사람들이 이 수영장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 수영장은 그저 하나의 공공시설이 아니다. 그들은 이 수영장을 하나의 생명체, 인격체처럼 대한다. 그들에게 이 수영장은 친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시민들이 사랑했던 친구가 죽음을 앞둔 나날들을 기록한, 일종의 멜로드라마다.
영화의 첫 시작은 포크레인이 수영장 여기저기를 부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이 수영장의 소멸은 이미 일어난 일이며 돌이킬 수 없는 사건임을 관객들에게 미리 알린 채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거되기 전, 폐장을 앞둔 수영장의 49일전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붙는 자막 여명(餘命). 얼마 남지 않은 쇠잔한 목숨이란 뜻이다. 영화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발표한 개념인 죽음의 5단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이 다섯 단계를 자막으로 띄우며 영화의 챕터로 삼는다. 시민들의 친구인 이 수영장은 그 5단계의 시간동안 당연히 아무런 말도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지만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시청에 시민들의 탄원서를 보내거나 ‘누마카케 수영장에게 보내는 편지’ 프로젝트를 여는 등 소극적으로 저항도 해보지만 이 수영장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없다. 사이타마 시청의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소중한 공간을 뺏어간 악당들인가? 그렇지 않다. 수영장 부지에는 학교가 들어설 것이다. 그 또한 공공시설이다. 다른 학교 부지는 사유지라 시에서도 대안이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수영장 철거 반대 시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쉽고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별의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마카게 수영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로 한정지으면 수영장의 구조대원 팀장을 맡은 중년의 남성이다. 그는 이 수영장에서 23년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해 왔다. 건장한 몸에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마치 베테랑 군인처럼 강해보이는 이 사람이 마지막 개장의 날, 누마카게 수영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그걸 듣는 시민들도 눈물을 참지 못한다. 그걸 보는 나 역시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영화는 진짜 멜로드라마가 맞다. 수영장을 너무나 사랑했던 시민들의 마음이 그걸 성립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보를 찾아보니 이 수영장은 문신을 한 사람까지도 입장이 허용되는 몇 안 되는 수영장이었다고 한다. 만인에게 친절한 친구 같았던 누마카게 수영장이 다시 시민들의 곁에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