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경상북도. 여기에서는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국민의 힘(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미래통합당)이 강세를 보인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2024년 치러진 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당선된 이들 중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들 정당 소속이다. 무소속이더라도 그쪽 정당 공천에 떨어져 출마하여 당선되었을 뿐이다. 이 기간이 무려 40여 년이다. 40여 년 동안 어느 한 쪽의 정당만이 당선되는 것은 전제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래서 이곳은 이들 정당의 색깔로 만들어진 ‘빨간 나라’일 수밖에 없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는 이 풍토에 저항하는, 균열을 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혹자는 이 영화를 선동적 성격을 지녔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자이거나 그의 가족이거나 그의 운동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힘 후보자는 아주 잠깐 등장하며, 국민의 힘 후보자 선거운동원은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가치는 강자들의 모순을 파헤치며 약자들의 억울한 상황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은가? 문학은 폭력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한 한강 작가의 말을 원용하자면 영화도 예술이므로 폭력에 저항하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영화를 옹호하자면, 이곳은 빨간 나라이고 파란 옷은 핍박받으므로 핍박받는 자들을 그리는 것은 영화의 가치를 따른 것뿐이다.
40여 년 동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은 한없이 힘겹다. 그 힘겨움이 어떤 이에게는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이 된다. 선거 홍보 명함까지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막막함은 그들을 마구 때리는 솜방망이가 된다. 겉으로는, 피부에는 멍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는 솜방망이일망정 계속하여 그것을 맞다 보면 마음에는 큰 멍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마음의 생채기를 그들은 웃음으로 승화한다. 마음에 울분을 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한없이 가벼운 웃음을 날리는 젊은 선거운동원의 모습에는 일종의 경외심을 품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몇십 년 동안 한 지역에서 어느 한 정당만이 계속 당선되는 곳이 어디 이 한 곳뿐이랴. 대구도, 부산도, 경상남도도, 전라북도도, 전라남도도, 광주도 마찬가지이다. 빨간 나라, 파란 나라, 한때 충청도는 녹색 나라이기까지 했다. 정당의 정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정강을 찬성하는 쪽에 투표하여야 한다는 것이 너무 이상적인 발상일까? 빨강, 파랑, 녹색이란 지역색을 허무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한때 우리 지역은 한 색깔만이 당선되는 곳이었지. 그래서 <빨간 나라를 보았니>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지. 그 영화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냈지.”라는 회고담만 들리는 곳으로 우리나라가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