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관찰자의 일지>는 세 개의 이야기를 이어 붙여 하나의 세계로 만든다. 이 영화는 사소한 걸 통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각 이야기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그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 발화된 단어들은 서로 모순되며, 사건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파문을 남긴다. 영화는 그렇게 단편적인 기록들을 일기처럼 엮어내며, 결코 인생은 잘 짜여진 각본처럼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영화는 삶에 대한 기록이자, 영화에 대한 사유 일지도 모르겠다.
1. 집으로 가려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영화감독 민주가 시의원이 된 전 남편 송천지와 술자리에서 마주하는 장면들로 이루어진다. 민주가 새 부인이 있는 송천지에게 “파티(재미있는 거) 할 때 연락해라”라고 한 말은 창작자로서 놓치지 않으려는 본능, 곧 재미있는 삶을 향한 집착으로 읽힌다. 반면 송천지는 “내가 한 게 아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정치인의 언어를 흘린다. 이는 권력의 변명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대사이기도 하다. 권력의 허위와 예술의 욕망이 같은 언어로 발화되는 이 순간, 영화는 삶이란 ‘재미’와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아이러니의 무대임을 보여준다.
2. 낯선 도시의 도망자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르비아에 체류 중인 영화 감독 원중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낯섦과 긴장감이 영화의 생명” 이라고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누군가에게 추적당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너는 날 모른다”,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 라는 대사가 교차하는 장면은 예술가와 암살자의 언어가 뒤섞이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추적극의 긴장 속에서도 인물들이 끝내 붙잡는 것은 ‘재미’ 라는 단어다. 그것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무의미한 삶을 견디게 해주는 동력이다. 그러나 그 욕망 역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열망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충족되지 못한 채 남는다.
3. 남아있는 관찰자들
마지막 에피소드는 태국의 숙소와 공원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보고 싶어 하는 존재만 보인다” 는 말은 귀신을 기억의 은유로 바꾸고, “그때 그 순간만 반복 된다” 는 대사는 상실이 결코 단일한 이야기로 봉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비디오 가게를 갔던 기억은 오직 그 장면만 반복되며 현재를 따라온다. 귀신은 죽은 자의 형상이 아니라, 끝내 정리되지 않는 기억의 파편으로 나타난다. 공포라기보다 집요한 기억,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세 가지 이야기들은 공간과 장르가 다르지만, 대사들이 만들어내는 공통의 결은 분명하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재미’를 반복적으로 말한다. 정치인은 허무 속에서, 예술가는 긴장 속에서, 여행자는 기억 속에서 ‘재미’를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 욕망은 언제나 균열 속에 남는다. 재미는 곧 삶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지만, 동시에 손에 잡히지 않는 감각으로만 존재한다. 인생은 이렇게 모순되고 흔들리며, 결코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 것이다.
<관찰자의 일지>는 그래서 사건보다 말에 집중한다. 우스꽝스러운 농담, 씁쓸한 변명, 사적인 고백, 환상 같은 속삭임이 이어지며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대사를 담아내는 데 집중하고, 배우들은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발화한다. 웃음과 불안, 애정과 폭력은 모두 대사 속에 기록된다. 그 기록은 모여 하나의 일지가 되고 영화가 된다.
영화는 묻는다. 인생은 무엇으로 정리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정리될 수 있는 것인가. 정치적 책임, 창작의 긴장, 기억의 소환, 이 모든 것이 합쳐져도 단일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인생은 언제나 정리되지 않은 채 남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기록을 멈추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을 계속 붙들어 둔다.
결국 <관찰자의 일지>는 내 주변을 둘러싼 현재를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익숙하지만 잘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것. 즉, 정리되지 않는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영화이며, 그 불완전한 기록이야 말로 진실에 가장 가까운 모습임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삶의 아이러니를 기록하는 동시에, 기록 자체가 곧 영화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영화에 관한 관찰자의 기록’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