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단잠> : 모르는 얼굴을 주워 들고

By 이영욱

  누군가의 마지막을 전해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의문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의문에 대한 나름의 추측을 엮어내려는 시도는 잠시 중단되어야 한다. 결말을 알고서 찾는 답은 쉽게 비겁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해진 끝을 안다는 사실은 그것‘만’을 안다는 것이지만, 이는 많은 경우 주어진 흔적을 전부 징후로 읽어도 된다는 착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오만은 남겨진 이들을 아주 쉬운 방식으로 상처입힌다. 영화 <단잠>의 모녀와 같은 사람들을 말이다. 인선(이지현)과 수연(홍승희)은 3년 전, 남편이자 아버지인 지호(권혁)를 잃었다. 지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남겨진 이들에게는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주어진다.

 

  그런 인선과 수연에게 주변인들의 태도는 여전히 쓰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아픔을 이미 지나간 것으로 함부로 취급하거나, 그 사실에 지나치게 매여 오히려 상처를 들쑤신다. 인선의 괴로움은 말에서 비롯되었다. 지호의 죽음이 자꾸만 가벼운 농담으로 되풀이되는 이유를,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인 탓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수연은 말하지 않기에 상처받는 이다. 설명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수연의 사과는 가볍게만 비친다. 그러나 몰이해 끝에 프레임 안에 홀로 남겨진 수연의 표정은 그것이 진심이었다고 해명한다. 그렇게 우리는 두 사람의 반응이 과거의 연장선에 있음을 뒤늦게 이해한다.

 

  그들에게 과거는 여전히 현재에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그들의 과거가 현재와 혼재해 있음은 영화가 문득문득 두 사람의 곁에 지호를 들이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미 이곳에 없는 지호는 그들 옆에 나란히 앉거나, 갑자기 찾아와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수화기 너머에서 응답한다. 하지만 해묵은 물음을 던지고 죽음의 냄새를 감지하는 두 사람의 절박함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이미 늦은 일임을 드러낸다. 그렇게 시계 속에 박제된 초침처럼, 인선과 수연의 시간은 좀체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단잠>의 시선은 두 사람이 미미하게 일렁이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건 인선과 수연이 타자와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질문을 하거나 받는 두 사람의 말을 따라 카메라가 천천히 줌인으로 다가선다. 그렇게 가까워진 얼굴은 인선이나 수연만이 아닌 다른 이의 것일 때도 있다. 그들의 말이 고집이나 체념처럼 들리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마치 중요한 것은 답을 함께 기다리는 일이라는 듯, 반응을 조심스레 가늠하는 영화의 시선은 한없이 사려 깊다.

 

  이러한 시선은 남겨진 이들이 기대는 방식과도 닮았다. 감히 안다고 말하는 폭력도, 함부로 나아질 것이라는 단정도 배제하는 것. 그럼에도 문을 두드리는 것. 마주 보고 서 있지 않을지언정 나란히 놓여 먼 곳을 함께 응시하는 것. 이 모든 몸짓은 상처의 온전한 공유라는 환상 대신 곁에서 이뤄지는 공명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서로를 모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흉터 아래 잠긴 기억은 완전히 잊을 수도, 온전히 기억할 수도 없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회복은 더디게, 어쩌면 간헐적으로 찾아오리라. 하지만 우리는 그 위로 멈췄던 시간이 흘러갈 날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인선은 오랜 마취에서 깨어났으며, 수연은 돌려받지 못한 안부를 묻는 법을 배웠으므로. 현관에 걸린 자화상의 주인이 그러했듯, 그들은 불가해한 것과 나란히 걸어가는 연습을 이어갈 것이다. 과거를 복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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