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땅 아래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눈을 감은 듯 어둡고, 한 그림자가 홀로 살아가던 곳. 그림자는 거울처럼 닮은 두 아이를 올려다보며 속삭인다. “너희는 몸이 두 개니까 하나를 줘. 나랑 바꾸자.” 이 불길한 동화는 영화 속 인물들의 현실로 스며든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수안 앞에 죽은 줄 알았던 언니와 똑같이 생긴 재인이 나타나면서 가족은 다시금 깊은 혼란과 마주한다. 엄마 금옥의 오래 묻어둔 비밀이 드러나고, 그들은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 선택의 기로는 판타지적 장치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지상의 밝은 세계와 땅 아래의 어두운 세계가 서로를 비추며 이야기의 긴장을 만든다. 두 세계는 삶과 죽음, 남겨진 자와 사라진 자의 경계로 읽힌다. 어른들의 세계는 두려움과 불안을 먼저 감지하고, 그 위험을 서둘러 없애려 한다. 반면 수안은 그 세계 속에서 재인에게 손을 내밀며 “함께 살아가자”는 쪽을 택한다. 아이의 선택은 공포가 아니라 연대로 응답하는 길이며, 영화는 그 순간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영화는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게 만들고, 섣부른 해답 대신 여백을 남긴다.
이 질문은 곧 상실의 문제로 이어진다. 영화가 다루는 상실은 결코 지워지거나 대체되지 않는다. 닮은 얼굴은 상실을 덮는 위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실을 다시 직면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같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인물들은 잊어버렸다고 믿었던 상처와 다시 조우하고, 그 아픔을 새롭게 정의해야만 한다. 영화는 상실을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인정하고, 그 무게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실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삶을 변형시키지만, 그 그림자와 함께 걷는 일이야말로 남겨진 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 무거운 주제는 연출의 절제 덕분에 더욱 깊이 다가온다. 피와 폭력 대신 긴장감은 침묵과 어둠, 그리고 인물들의 서로를 꿰뚫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림자 귀신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잔혹 동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더 고요하고 절제된 세계로 향한다. 영화는 잔혹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피로 물든 이미지를 선택하지 않고, 감정의 밀도와 공간의 어둠으로 관객을 서서히 잠식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는 희망을 향한 출구를 연다.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되던 긴장은 두 아이가 손을 잡는 장면에서 비로소 풀린다. 그 장면은 희생의 명령이 아니라 공존의 선언이다. 상실을 지우는 대신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며, 어둠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빛을 보여준다. “언젠가 빛이 들 것이다”라는 약속처럼, 두 아이가 만든 작은 세계는 암흑을 지난 뒤의 빛처럼 반짝인다. 스크린이 꺼진 뒤에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상실의 문턱 앞에서, 당신은 누구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