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겨울날들> : 겨울날에서 시작하여 겨울날에서 끝나는 겨울날들

By 장윤석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전 부문의 영화 보기가 항상 어려웠다. 영화가 어떻게 다가올지 상상이 불가했기에 그랬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비전 부문에 속한 영화들의 분위기 편차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느끼기도 했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과 소리를 들려주는 비전 부문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영화가 바로 <겨울날들>이다.

 

언젠가부터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 쓰인 얘기를 믿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이유인지에 대해서는 구구절절이 말하자면 너무 길어서, 짧게 말하자면 천박하게 보일까 봐 관두겠다. <겨울날들>의 프로그램 노트는 알만한 사람 다 아는 정성일 평론가가 쓴 것이었다. 그렇다고 믿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따지자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 올리는 글인데 별사람 별수가 따로 있겠는가. 그런데, 정말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프로그램 노트는 난생처음 보았다. 첫 문장의 한 구절만 인용하겠다. 

 

“제목이 내용이다.”

 

웃기는 건 바로 이 구절을 보고 보기로 결심했다. 제목인 ‘겨울날들’이 내용이라고 하니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당기는 문구가 따로 있겠는가. 제목이 내용이라고 하니 그만큼 따끈한 겨울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쓴 건 맞는데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겨울 이야기는 맞다. 그런데 따끈한 게 아니라 썰렁한 겨울 이야기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까지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랜만에 순수로 똘똘 뭉친 비전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생각에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영화일지를 열심히 생각하며 보기로 작정했다.

 

<겨울날들>을 보면서는 오로지 서울의 겨울이란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지 주연도 따로 없고, 서사도 따로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집중했다고 할 수도 있다. 영화 감상이라면 습관처럼 찾는 것이 있지 않은가. 누구의 무슨 얘기인지 뭐 그런 거 말이다. 바로 그런 걸 찾아보려고 최선을 다하다 보니 집중이 되더라는 것이다. 물론 보기 좋게 실패했다. 끝까지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 채 막이 내리는 걸 보고야 말았다.

 

처음 얼마간을 보면서는 이 영화의 감독은 길게 찍는 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정도 더 지켜보니 카메라를 움직이며 촬영한 장면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배우의 얼굴도 잘 보이질 않고, 대사 한마디 들리질 않으니 그런 걸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들리는 말은 있었는데 그건 배우들의 대사가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뉴스에서 우리나라의 자살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생명의 전화가 먹통이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때 그 장면에 출연 중인 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열심히 밥만 먹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낀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이 영화의 심심한 장면들을 지켜보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붙이고 있었다. 분명히 보이고 들리는 영상과 음향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잘 알지 못하다 보니 그 의미를 뻔한 곳에서 찾게 되었다. 여럿이 띄엄띄엄한 시간에 누구와의 사적인 대화도 없이 제 할 일만 하는 것만 보니 그냥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 같았다. 거기에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소통의 부재(不在)”였다. 캐릭터 중 누구도 다른 이와 대화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다른 이를 지켜보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그곳만 계속 응시하는 듯 관찰자(?)의 시선조차 고정되어 있었다. 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들려왔지만 잡음이나 소음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이 그런 소리에 눈길을 주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니까. 단 한 번 큰 소리가 들린다. 영화의 캐릭터가 자극에 반응을 보이는 유일한 장면이 거기서였는데 그것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영화는 끝이 난다. 아직도 계절이 겨울이란 정도는 알겠고, 다른 건 전혀 모르는 채로. 관객들이 확실히 아는 것은 있다. 겨울날에서 시작해서 겨울날에서 끝났으니 문자 그대로 겨울날들을 본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듣고 본다는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돌고 도는 지금의 세상이다. 남의 것은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는 것도 그 비슷한 의미를 담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소통이란 말이 떠올랐다. <겨울날들>에서는 사람들 간에 소통하는 모습이 없었다는 생각에 소통의 부재가 강조된 느낌을 받았다. 문제점을 애써 지적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생명의 전화 불통과 자살에 대한 방송을 연결고리 삼으니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정된 카메라를 고정된 시선으로 생각하니 볼 것만 보겠다는 혹은 굳이 둘러보며 소통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미로 생각해 버렸다. 내게는 <겨울날들>이 그렇게 다가왔다. 

 

이래저래 궁금한 점이 많아서 GV를 보았다. 혹시 거기서는 감독이나 배우의 코멘트 혹은 관객의 질문에서라도 소통이나 불통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서. 안타깝게도(?) ‘소통’이란 단어는 들리지 않았고, 주로 많이 들린 단어는 ‘일상’이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을 찍고 싶었다는 감독의 얘기를 들었다. 소통에 대하여 질문해 보려다 말았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는 답을 들을까 봐 무서워서. 영화 보는 동안 내 마음을 두드렸던 나만의 <겨울날들>에 대한 느낌을 그냥 버리기는 싫어서였다. 최소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를 이런 식으로라도 전하고 싶었다. <겨울날들>이 소통이 막혀버린 사람들 이야기로만 보인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전혀 아니다. 그런 모습에서 그런 주제를 떠올리는 시선도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사람마다 겨울날들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겨울날들>이란 영화 그리고 GV를 듣고 보면서 받은 선물이 있었다. 영화에 대하여 진중한 생각을 가진 최승우 감독의 다음 작품은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 것일지 궁금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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