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겨울은 춥다. 그저 춥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섭게 추워서 살이 에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길바닥에 흩뿌려진 물도 가볍게 얼릴 정도로 혹독하다. 특히 서울의 겨울은 영하의 겨울이라 그 혹독함이 남다르다. 서울의 겨울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만 같다. <겨울날들>은 서울의 겨울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묵묵하다. 철거의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말없이 노동한다. 갓 상경한 사내는 골목길의 계단을 열심히 오르고 내린다. 여인이라고 다를 건 없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바삐 계단을 오르고 내린다. 추위에 몸을 녹이기 위해 어떤 인물은 뜨끈한 국밥을 먹고, 기운을 내기 위해 든든한 제육을 먹는다. 하지만 식사 역시 '혼밥'이다. 교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대중교통 속 사람들에게 표정은 없다. 대체로 무채색 외투를 굳게 싸매고, 귀까지 이어폰으로 틀어막고 묵묵히 순간을 견딘다. 인물들은 철저한 개인으로 보인다. 대사가 하나도 없기에 그러한 개인주의는 더 심화된다. 가뜩이나 삭막한 겨울이라는 계절에, 사람들은 건조한 태도를 견지한다. 어쩌면 이러한 태도도 겨울의 부분이라는 듯이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살을 에는 추위가 얼린 건 인물들만이 아니다. 카메라조차 얼려버렸다. 시종일관 자리를 지키는 카메라에게 움직임이란 없다. CCTV 내지는 홈캠 같은 느낌을 주는 카메라는 인물을 절대 따라가지 않는다. 꽁꽁 얼어붙은 카메라의 렌즈 앞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인물들은 카메라에 다가가지 않고, 카메라 역시 인물들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감은 가혹한 이 겨울의 고독을 심화시킨다.
찬 바람은 살을 에는 듯 날카롭다. 그 날카로움은 직선으로 나타난다. 인물들이 오르고 내리는 계단은 무수한 직선의 연속이다. 이 밖에도 오르고 내리는 골목길은 가파르다. 이따금 등장하는 철거 장면에서도 직선은 확인된다. 여기서는 더 나아가 직선의 목재가 부서지고 아래로 추락한다. 부서지는 소음은 파괴적이다. 하지만 목재는 생명이 아니기에 신음하지 않는다. 민우가 불을 끄고 잠들려던 차, 직선으로 추락한 무언가 역시 '쿵' 소음만 냈지 신음은 내지 않는다. 어쨌거나 살아있지는 않는 듯하다.
<겨울날들>은 꽁꽁 얼어붙은 영화다. 장면을 담는 카메라도, 카메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도, 인물들의 말조차도. 모조리 얼어붙은 이 영화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안 그래도 고단한 삶을 적극적으로 가혹하게 그려낸다. 추운 겨울, 외투에 둘러싸여 표정 없는 얼굴로 생존을 위해 거리를 나서는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는 건 사치다. 그저 견뎌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