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보통 '휴가를 간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여행을 떠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집에서 달콤한 휴식을 보내는 것이 휴가일 수 있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휴가를 곧 여행이라 생각한다. 일상에서 달아날 수 있는 모처럼의 시간에 구태여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을 통해 답을 찾아가 보자.
시작은 작가 이(심은경)의 글쓰기다. 미간을 찌푸려 가며 써내려 가는 각본에 따라 해변에서 여자와 남자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잘 어울려 논 두 사람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만, 약속한 날이 이르자 비가 온다. 약속을 지키기 싫은 기상 악화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해변에서 재회한다. 새로운 장소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짧은 우정은 어쩐지 뻔한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뻔한 장면이 실은 영화 속의 영화임이 드러난다. 액자식 구성임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시작부터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꿈에서라도 깬 듯 반전이 갑작스러운 탓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움에 거부감을 느끼기는커녕, 우리는 꿈에서 깬 사람처럼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스크린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힘은 영화 속의 영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자연스러운 편집의 힘일 것이다.
작가 이는 말이라는 틀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에 갑갑해하고, 뜻하지 않게 맞이한 은사의 죽음 이후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필수품 같은 카메라는 덤이다. 작가 이의 여행은 순탄치만은 않다. 그러나 홀로 여관을 지키는 주인 벤조(츠츠미 신이치)을 만나고 본인이 쓴 작품 같은 '여행'을 경험한다. 우연히 만나고, 짧은 우정을 나누는 것. 이에 더해 카메라와 비단잉어로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은 으레 우리가 여행에서 경험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연상케 한다.
영화 속 영화는 여름 바다가 배경이고, 영화 속은 겨울 설원이 배경이다. 정반대의 배경임에도 조화롭다. 이 영화 하나만으로도 하계 휴가와 동계 휴가를 동시에 떠날 수 있는 셈이다. 영화 속의 영화는 작가 '이'의 작업이고, 영화는 미야케 쇼 감독의 작업이다. 겹친 두 개의 작업은 튼튼한 층위적 구조를 만들어 영화를 받친다. 액자식 구성의 편집은 갑작스럽지만 작위적이지 않다. 아마도 그 까닭은 두 작업 사이의 경계가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여행과 나날>은 일상에 새로움을 덧칠하는 여행의 묘미를 우리에게 건넨다. 이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두 번의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은 여운을 선사함과 동시에 노곤함도 전한다. 스크린 속 아름다운 풍경을 부단히 눈에 담은 덕분이다. 이 같은 노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새인가, 일상을 달아날 수 있는 모처럼의 시간이 귀하게 생겨났을 때 여행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나날에 새로이 덧칠된 <여행과 나날>로 인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