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세오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지만,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자신의 국적을 해명하는 일에 익숙하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질문하는 사람에겐 단순하고 대수롭지 않은 궁금증일 지도 모르나, 질문을 받는 세오에겐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왜곡당해야만 하는 폭력의 연속과도 같다. 그러나 그런 세오조차도 실은 자신의 출생에 관해서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중대한 문제 때문에 결국 세오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짧은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나선 자리에서도 돌아온 것은 차가운 조롱과 오해뿐이다.
세오에게 다가온 소라 또한 내가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데 괴로움을 겪어야만 인물이다. 남다른 성 지향성, 예기치 않은 상실로 힘들어하던 소라와 세오의 여정이 교차하며 관객은 비로소 두 인물이 지닌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두 사람의 상황은 다소 특수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닿아 보편적인 공감과 연민을 끌어낸다. 나에겐 당연한 것이 남들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 나와 타인 사이의 괴리가 세오와 소라를 계속 괴롭혀왔지만, 두 사람만큼은 서로를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한다. 편견이 없을 때, 두 사람은 그저 평범한 자신일 뿐이다. 외롭지 않길 바라는 보통의 인간. 누구를 사랑해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평범한 사람 말이다.
성별, 성지향, 직업 등, 영화는 공통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조합으로 남다른 연대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오와 소라를 괴롭게 한 것은 타인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타인이 없다면 진정한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자기 자신을 벗어나 타인의 삶을 되짚는 과정은 자신 안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 또한 자신을 향한 사랑을 이해하게 하는 여정과도 같다. 타인을 이해함으로써 내 안의 진짜 나를 발견하고, 내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과도 멀지 않다. 외면해서는 무엇에도 도달할 수 없으니까. 인생이 비극으로 끝날 것이라 꿋꿋이 믿고 끝내 떠난 여정에 한 번 더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줄 누군가가 있다. 어깨 한 번 부딪칠까 말까 한 우연 속에서 일어난 운명적 만남을, 신수원 감독은 사소한 모습의 포장으로 담담히 그려냈다. 예측불허한 인생이지만, 우리 모두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사랑할 용기가 있다는 메시지가 여느 때보다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혐오가 만연한 시대가 영화를 만들 이유가 되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아름다운 연대가 더없이 필요한 때임을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특성, 성질을 떠나서 나 자신과 타인을 유리처럼 투명하게 바라보는 것도 때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비록 그 여정이 쉽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내 시선과 마음에 담긴 ‘의도’를 제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고의 이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