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마르크스 캔 웨이트>라는 제목.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갔던 터라, 막연히 글자 그대로 마르크스라던지, 사회주의, 유럽의 근대사에 관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뷰와 전작들의 몽타주 장면을 오가며 이 영화가 “카밀로라는 천사”와 벨로키오 가족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났을 무렵 어떤 반전감마저 느꼈다. 시대나 가족, 다큐멘터리라는 지점을 다 제외하고도 그저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본 건 영화라기보다 한 사람의 거대하고 깊은 내면, 그리고 자아의 가장 무거운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해 곱씹을 수록 눈물을 참기 힘들다. 눈물이 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이 영화로부터 내가 겪은 상실의 기억과 슬픔을 떠올렸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다. 마르코와 벨로키오 가족이 카밀로에게 가진 감정을 관객에게 전이시키는 이 영화의 방식이 점층적이고, 견고하다. 그래서 그것은 곧 관객 각자의 “상실의 기억과 아픔”을 상기시킨다. 카밀로라는 인물의 서사와 마르코의 존재, 마르코가 거장 감독이라는 사실, 이 영화가 상실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은 인터뷰와 영화 속 장면 몽타주의 교차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의 형제들은 각자 카밀로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그에 대해 설명하고 그를 얼마나 사랑했고 그리운지에 대해 인터뷰한다. 마르코와 쌍둥이로 태어난 출생과 유년시절, 학창시절을 지나 젊은 시절에는 자아에 대한 큰 고뇌가 있었는데, 특히 연인 안젤라의 동생 인터뷰는 그의 내밀한 속마음과 말들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관객이 카밀로에게 더 크게 동화되게 한다.
그리고 다양한 얼굴들의 인터뷰들과 그 사이 사이에는 마르코의 영화 속 장면들이 몽타주 된다. 영화의 장면들은 주로 동생 카밀로를 그려낸 것 같다. 이 장면들의 교차 배열은 글자나 말 한 글자의 설명없이, 온전히 카메라로 추상적인 것을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복합적이고, 완전하다. 카밀로의 쌍둥이 형 마르코가 느낀 현실의 감정이 재료가 되어, 거장 영화감독인 마르코 벨로키오의 영화가 만들어졌으며, 마르코의 삶 위에 거장의 영화가 건설되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마르크의 삶과, 영화와, 목적과 같은 거대한 것들이 얼기설기 엉킨 채로 고스란히 나에게 왔다.
그 거대한 것을 바라보며, 지난 나의 상실의 기억을 떠올렸다. 누구든 시간을 지나면 죽음과 상실을 경험한다. 그것들은 삶에 큰 좌절과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목적과 원동력을 주기도 한다. 무언가를 잃고 그리워하는 경험과 감정들은 사람을 한 단계 복잡한 존재로 만든다. 카밀로의 쌍둥이 형 마르코가 평생을 써 가족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거장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으로 살아낸 것처럼.
96분의 고해성사를 아주 초연하게 내보이는 그의 얼굴에서 숭고함을 느낀다. 그의 삶은 죽음을 만나는 것이고, 위하는 것이고, 향하는 것일 것이다. 그 태도를 지지하고, 박수치고, 배우고싶다. “마르크스는 나중에.” 라는 말이 한동안 나에게 가장 슬프고 그리움이 남는 문장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