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이마고> : 미완의 성충(成蟲)에 비친 내면

By 백동현

  데니 우마르 피차예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마고>는 조지아 판키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한다. 프랑스 파리에 있던 우마르는 멀리 떨어진 아버지에게 안부를 묻고, 그 통화는 곧 그가 수십 년간 겪어온 개인사와 뿌리 깊은 정체성의 문제를 조명하는 서막이 된다.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 이복동생들을 둔 복잡한 가정사는 감독의 내면에 짙은 흔적을 남겼다. 또한 체첸 분쟁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어머니를 따라 모스크바에서 겪었던 차별의 기억은 성인이 된 그에게 이주민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덧씌웠다. <이마고>는 이러한 개인의 파편들을 하나로 꿰어가는 여정이자, 과거와 화해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성숙의 기록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바로 제목인 ‘이마고’(Imago)가 함의하는 바다. 이는 곤충의 유충 단계가 끝난 후 비로소 날개를 펼치는 ‘성충’의 시기를 뜻한다. 영화 상영 후 GV에서 밝힌 것처럼, 감독은 자신이 과연 이마고의 단계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질문에 확신하지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는 곧 영화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마고>는 과거를 온전히 마주하고, 그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한 예술가의 진솔한 고백이자, 현재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성찰의 기록이다. 과거로의 회귀는 자칫 현재를 훼손할 위험을 내포한다. 하지만 감독은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꾸준히 내면을 응시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작업물을 만들어낸다.

 

  특히 대본 없이 현실을 담아내는 감독의 진솔한 태도는 영화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우마르와 아버지 사이의 세대 차이, 그리고 공동체의 통념과 충돌하는 지점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른 결혼과 많은 자녀, 그리고 어머니가 사둔 땅에 가족을 위한 큰 집을 짓기를 권유한다. 그러나 우마르는 이러한 보편적인 삶의 궤적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아를 탐색하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간다. 그가 꿈꾸는 집은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정돈된 가정집이 아닌, 마치 '별장 같은 나무 위 오두막'이다. 이러한 꿈의 구상도는 아버지와 새어머니, 이복동생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우마르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남들이 바라는 삶 대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충고나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마고를 향해 나아가는 감독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공동체와의 관계 묘사 역시 흥미롭다. 감독은 자신이 지역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포용 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흑백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그가 처음 판키시에 도착해 가정집에 들어갈 때 카메라는 우마르 감독의 시선을 따라 담장 너머로 입장하지 않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아직 이 공동체에 갓 발을 들인 외부인에 불과하다. 반면 우마르가 아버지네 가족을 집에 초대할 때 카메라는 담장과 반대편에 위치하여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포착한다. 이는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인의 시선이다. 또한 우마르가 자기만의 새 집을 지을 필지는 수풀과 나무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어 있다. 담장처럼 확실한 구분은 아니더라도 이는 곧 우마르가 공동체와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어느 정도 고립된 동시에 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처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호 존중하려는 감독의 열린 자세는 그 자체로 하나의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GV에서 언급된 상징적인 미장센에 대한 감독의 솔직한 답변은 영화 비평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곤충을 싫어하는 두 사람이 가장 진솔한 대화를 나눈 장소가 숲속이라는 역설적인 설정이나, 유충이 거미줄에 엉겨 붙는 장면은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에게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감독은 이러한 우연한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영화 작업이 감독만의 영역이 아닌 관객과의 공동 창작물임을 인정한다.​ 마치 극중에서 특히 강조하는 두 사람의 관계처럼, 거미줄을 떼어낼수록 더 엉겨 붙는 현상은 관계의 복잡성을 시각적으로 은유한다. 두 사람이 강하게 반발할 수록 더욱 큰 접점이 생긴다. 해묵은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였던 응어리는 선명해짐과 동시에 희미해진다.  

 

  <이마고>는 단순히 가족과 공동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성장에 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는 과거를 탐색하는 용기,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 그리고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온전히 담겨 있다. 우마르 감독은 자신이 아직 미완의 성충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미 이 영화를 통해 그의 내면은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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