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여자 중학교에 새로 전학해 온 신위(래니스 태이)는 곧바로 바네사, 소피아, 지나와 친해진다. 경직된 학교 분위기에 불만이 많은 이들은 쉬는 시간에 주로 공사장의 숨은 곳을 탐색하며 보내거나 방과 후 싱가포르의 후미진 곳을 배회하며 서로의 우정을 쌓는다. 장기자랑 시간, 이들은 싱가포르 건국 신화를 연극으로 패러디해 발표하고, 그들의 표현 방식은 교사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는다. 캠코더에 담긴 영상은 학교에 의해 검열당하고, 학생폭력 조직 모의 혐의로 정학과 퇴학의 위기를 맞는다.
탄스유의 <아메바>는 어느 여자중학교를 권위주의 국가인 싱가포르의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학교의 규율, 검열, 퇴학이라는 제도는 국가 권력이 시민을 통제하는 방식의 은유로 읽힌다. 학교는 일종의 수족관이고, 학생들은 그 안에 갇힌 아메바들이다. 형태를 바꿔가며 그저 순응하며 살아남으려는 아메바 같은 존재들 속에서, 반항아이자 이단아 격인 신위는 또래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싱가포르의 상징으로 사자의 머리에 물고기의 꼬리가 달린 상상의 동물인 머라이언(Mermaid+Lion)은 실체가 없는 세계, 인위적으로 가공된 국가의 메타포로 제시된다.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머라이언의 기원은 조작된 것이고, 건국신화 속에 등장하는 사자가 실재한 적 없다는 사실이 공유되면서 싱가포르가 사실 허구 위에 세워진 나라임을 드러낸다. (싱가포르라는 국가 명칭은 13세기 인도네시아 왕자가 섬 안에서 사자를 보고 ‘사자의 도시’라는 의미의 싱가푸르라는 왕국을 세운 건국신화에서 유래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등장한 귀신의 존재는 이런 머라이언의 허구적 신화와 연결된다. 가정에서 모셔지는 실체 없는 망령으로서 조상 숭배 문화는, 보이지도 않고 실재하지도 않는 상징이 싱가포르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주인공 신위는 권위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기성세대가 경계하는 요주의 인물이지만, 다른 한편 학교 아이들은 다소 소극적이지만 그를 지지한다. 억압된 질서에 겉으로는 순응하는 듯한 아이들도 실은 저마다 드러낼 수 없는 불만을 속으로 안고 있다. 신위는 단순히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 소녀가 아니라 탄스유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주변 세계의 허위성과 가식성에 의문을 던지는 문제적 인물이기도 하다.
캠코더 사건으로 일어난 사건을 만회할 기회가 이 네 명의 소녀에게 주어진다. 머라이언 상이 담긴 그림 인터뷰 시험을 통해 자신들에게 쏠린 부정적 시선과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다. 바네사, 지나, 소피아는 인터뷰어가 원하는 ‘모범 답안’을 읊는다. 그들은 입을 모아 사자는 실재한 동물은 아니지만 머라이언은 국가 구성원의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평소 장난끼가 넘치는 지나는 머라이언의 해부학을 질문하는 시도까지는 한다. “왜 물고기의 몸에 사자 머리를 한 건지 궁금해요.”
반면 신위는 정면을 응시하며 질문을 한다. “가끔은 내가 머라이언이 된 것 같은 상상을 하곤 해요. 거기 서 있는 게 어떤 기분일까요? 나는 그것이 마치 수족관 안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는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 나 자신은 늘 무엇이 진짜인지 묻게 돼요. 그런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도 말할 수 없는데, 무엇이 진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신위의 얼굴은 감독 자신의 얼굴로 겹쳐 보인다. “ 매일매일 우리의 역사의 일부가 지워지고 또 지워질 때, 시험에서는 그저 머라이언이 번영과 변화, 국가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대답해야 할 뿐일 때, 우리가 그 말 한마디도 믿지 않는데… 어떻게 이 수족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일상이 돼버린 한국 사회와 평화로운 도시 국가의 모범 사례인 싱가포르를 대조하며 종종 민주주의를 회의했던 나에게, 이번 영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깨끗하고 풍요롭지만,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온전히 허용되지 않는 곳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아메바>는 정교한 은유로 묻는다. “아직도 안전한 수족관을 동경하는 이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