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기생충> 이후로 하류층들끼리의 다툼은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기생충>이 직업적 갑과 을의 관계, 경제적 능력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정의했다면, <미아>는 개인의 대인관계 또한 하나의 자산으로 작동하며 계급을 나누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감독은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보다 좁은 인간관계의 프레임으로 끌어오면서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누가 진정한 약자인가,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가’라는 의문이 영화 내내 관통한다.
주인공 서림(강해림)은 일하는 병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정직원들끼리의 최소한의 인사였던 음료조차 받지 못한다. 이런 작은 설정들이 그녀가 병원에서 한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철저히 고립된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과도하게 집착하지만, 결국 그마저도 끝을 맞는다. 혼자 남겨진 그녀에게 남은 건 생활고와 만료 직전의 보험뿐이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자신의 악행에 당위성을 찾길 원한다. 서림 역시 보험금을 받기 위해 쌍둥이 동생의 죽음에 연루된 숨이(배강희)를 이용하려 한다. 그녀에게 숨이는 복수라는 명분과 철저한 고독이라는 조건을 모두 갖춘 완벽한 희생양처럼 보인다. 하지만 항상 도망치고 보호소에서 구타를 당하며 살아온 숨이가 사실은 생존을 위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서림은 계산하지 못한다. 서림의 계획이 어긋나면서 사건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연대감과 동질감이 싹튼다. 이 과정은 적과의 동침에 가까운 긴장감을 형성하며, ‘연대와 배신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영화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화는 두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활용한다. 서림의 병원 동료들, 남자친구의 바람 상대, 숨이의 옛 친구들은 어둡고 무거운 영화의 톤을 더욱 짙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환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감독은 이들을 통해 주제를 일관되게 확장하고, 관객이 한층 다채롭게 영화를 감상하도록 만든다. 작은 조연들의 리얼리티가 주인공들의 비극과 어우러지며 영화의 세계관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다.
유종석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미아>는 개연성과 연출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남는다. 독백 같은 대화로 시작하는 인상적인 오프닝처럼 서림의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가 영화 전반에서 좀 더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인물을 활용해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와 배신을 한 줄기로 뚝심 있게 보여주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감독이 앞으로의 작품에서 이런 주제를 더욱 정교하게 다룬다면, 관객은 더욱 밀도 있는 이야기와 연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미아>는 완벽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그늘진 단면과 인간 관계의 잔혹한 현실을 동시에 비추며 첫 장편 작품으로서 충분히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