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사담 후세인의 철권통치 아래 고통을 겪던 이라크, 그 암울한 현실을 무대로 펼쳐지는 <대통령의 케이크>는 더 이상 단순한 요리 과제가 아니다. 소녀 라미아가 케이크 재료를 하나하나 모으려 애쓰는 여정에는, 독재 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이의 처절한 몸부림이 오롯이 스며 있다. 작고 투명한 눈동자에 비친 세계는 무자비하게 잔혹하고, 영화는 그 어린 시선을 통해 현실의 모서리를 한 칼 더 날카롭게 베어낸다. 라미아가 겪는 숱한 어려움들은, 정치적 압박과 경제 제재라는 이름 아래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 어떻게 산산조각 나는지 몸으로 증명한다.
달걀, 밀가루, 설탕. 세 가지 케이크 재료는 이라크라는 사회가 안고 있는 복잡한 현실을 빗댄다. 각 재료는 라미아가 성장의 길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장벽,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직면하는 도덕적 갈등을 상징한다. 이 어린 소녀는 가혹한 현실과 맞서 싸우면서, 슬금슬금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난다.
풍요의 대명사, '달걀' 하나를 얻기 위해 라미아는 어린 몸으로 노동의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그 노동은 곧 불평등과 착취라는 색을 덧입고, 세상 어디에도 공정함이란 없다는 점을 깨닫게한다. 어른들의 세계, 그 복잡한 이중성을 그는 조용히 들이마신다. 심지어 불공정한 거래조차 거절할 수 없는 독재 아래, 시민들이 침묵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익힌다.
삶의 바탕, '밀가루'를 훔쳐야만 하는 순간, 라미아는 무너진 질서 속에서는 모든 삶이 비정상적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자신의 손으로 훔친 밀가루 봉지에는, 생존의 논리와 도덕적 짐이 동시에 얹혀 있다. 타협과 고뇌, 옳고 그름의 그림자가 마음 한 구석을 실핏줄처럼 스친다.
'설탕'에 이르러서는 이야기의 결이 더욱 쓰라리다. 달콤한 것을 얻기까지 소녀는 원치 않는 시선과 위협을 견뎌야 한다. 사랑하는 힌디를 훔쳐간 어른의 음흉한 눈길, 온몸을 감싸는 불안은 억압받는 사회 속에서 여성, 특히 어린 여자아이가 겪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 일련의 경험들이 라미아의 내면에 새겨지는 순간, 소녀는 세상의 숨겨진 어두움을 처음으로 각성한다. 자기 몸조차 권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이, 소리 없이 삶에 파문을 남긴다.
세 재료가 모이는 과정은 그냥 물리적인 여정이 아니다. 그것은 라미아가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성장하는 정신적 시간, 억압에 맞서 삶을 버텨내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달걀, 밀가루, 설탕 각각은 그녀에게 있어 어쩌면 한 권의 성장소설, 혹은 세상의 법칙을 깨닫는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영화의 앞에서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라미아와 친구 사이드의 '눈싸움'은, 어쩌면 그들이 스스로 발명해낸 유일한 저항 방식이자 생존법이다. 이 눈맞춤은 단지 심심풀이 놀이가 아니라, 공포와 혼란이 뒤섞인 환경에서 아이들이 마침내 스스로에게 허락한 자율성이다. 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희미한 빛을 보며 아이들은 잊고 있던 자유를 슬쩍 훔친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승리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한다. 라미아가 케이크 재료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감정과 성장의 순간들은, 이 눈싸움과 맞물려 아이들만의 순수하고 강인한 방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라미아가 완성해내는 케이크는, 순응과 저항,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윤곽선이자, 억압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는 작은 흔들림이다. 영화의 마지막, 사담 후세인 생일 파티 장면에 라미아의 노력이 떠오르는 순간, 소녀의 분투가 거대한 폭력 앞에서 얼마나 덧없이 스러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에 대한 집요한 의지를 차분히 노래한다. 라미아에게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결국, 억압적인 사회에서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붙드는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공감할 만한 성장의 이야기이고, 인간 존재의 가장 단단한 근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