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대한석탄공사 강원 태백 ‘장성광업소’가 2024년 폐광되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개발을 시작한 이후 88년간 운영되던 국내 최대 탄광으로 한때 6천여 명의 직원이 근무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주로미, 김태일 감독은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앞세워 <이슬이 온다>의 배경을 폐광 직전의 장성광업소로 선택했다. 영화광들은 이미 1999년 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보여준, 쏟아지는 장대비와 석탄 가루 뒤집어쓴 주인공들의 결투 장소인 ‘장성광업소’의 영상미를 떠올릴 것이다.
누가 광부가 되는가. 물론 식민통치를 받던 때는 억울하게 광부가 되기도 했으나, 세상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들이 스스로 광부가 되기도 한다. 땅 위의 세상에서 더는 희망이 없을 때, 광부가 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념으로 독기를 품고 시커먼 굴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서 광부들이 일하는 곳을 막장이라고 부른다. 갱도의 맨 끝,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 앞이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공간, 인생의 절망보다도 더 캄캄한 세상, 어쩌면 그곳이 세상의 끝이 될 수 있겠다.
앵글은 천천히 그들을 따라간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위험하다. 특히 붕락사고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린다. 굴을 파거나 채탄을 할 때 천장에서 암석이 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붕락이라고 하는데, 직전에 미세한 탄가루가 먼지같이 이는 것을 그들은 “이슬이 온다”고 표현한다. 갱도 입구에서 막장까지 광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는다. 조명을 쓰지 않는다는 감독의 원칙 때문인지 광부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담겨졌다. 채탄부 A조 여섯 명은 이곳에서 생사를 함께하지만, 그들은 결코 막장 인생이 아니다. 스물한 살에 들어와 청춘을 다 보낸 자, 3년만 일하겠다고 들어왔으나 20년을 훌쩍 넘긴 이,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줄 수 없다는 일념으로 38년 동안 채탄에서 보낸 가장, 심지어 광산에서 죽으면 보상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노려 가슴에 죽음을 안고 들어온 사람도 있다. 석탄과 물이 뒤섞여 진흙처럼 흘러내리는 죽탄을 피하며, 발파 작업 때 날아오는 돌덩이에 수없이 머리를 부딪히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를 이겨내며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은 막장 앞에서도 탄가루를 훌훌 불어 밥을 삼켜야 한다.
그들이 검은 막장에서 검은 울음을 토하면서 지옥인 굴속에서 채탄 광부로 버텨낸 이유는 오직 가족이었다. “나 혼자 참으면 가족들이 즐겁다.”는 대사가 가슴을 때린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광부를 가리켜 “전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탄광의 비참한 근무조건과 열악한 노동자의 인권은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의 후반부는 끊임없이 노동조합 활동이 봉쇄당하던 35년 전,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주장하며 불과 29세의 나이로 분신한 성완희 사건을 다룬다. 당시 분신 현장에 있었던 다섯 명의 친구들도 모두 전국으로 흩어졌고, 광부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했던 청년들도 이젠 머리가 희끗해졌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그들을 찾아 카메라 앵글은 다시 초점을 맞춘다. 태백시장 재선에 도전하는 류태호, 탄광연구소 소장 원기준, 성완희 열사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안재성, 8년간의 광부 생활을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이연복, 정육점을 운영하는 전미영도 한때 노동운동에 몸담았고, 그녀의 남편인 광부 출신 천삼용, 그리고 김종원, 김영문 등. 이들 중 아직 태백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자도 있다.
이제 광산은 폐광되고 한때 ‘산업 전사’로 불리던 그들의 삶도 달라졌다. 과연 그들은 ‘막장’ 동지들을 어떻게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