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요즘 시대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절대 망할 일 없을 것 같은 제지업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기계화로 기술직의 일자리마저 위협받는다. 비극적인 작금의 사태를 당면한 만수(이병헌)는 네 가족, 아니 여섯 생명의 가장이다. 만수의 실직은 아이러니하게 힘의 상징을 회사로부터 선물 받으면서 깨닫게 된다. 이 아이러니함을 영화 제목 <어쩔수가없다>를 되뇌며 곱씹어본다. 시작부터 사색하게 만드는 <어쩔수가없다>의 끝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에 잠기게 될까?
시작부터 되뇐 <어쩔수가없다>는 제목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보면서 다시금 중얼거리게 된다. 실직한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세상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녹록지 않다. 일자리는 있다. 내 자리만 없을 뿐. 만수는 그 가슴 아픈 현실에 굴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차지한 이들을 제거하기로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그러하듯 준비도 부족하고 행위도 서투르기 짝이 없다. 게다가 관대하기까지 하다. 동병상련의 처지에, 차마 범모(이성민)에 대한 연민을 저버리지 못하고 알량한 선심을 베푸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모순도 잠시, 골계미라는 것이 폭발해 버린다. 실직자이자 피해자인 범모의 생명력 넘치는 고성은 경쾌한 리듬의 음악 소리에 가혹하게 묻혀버린다.
실직한 만수의 아내 미리(손예진) 역시 가정을 위해 경력 단절을 감수하고 재취업한다. 가정 내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집을 팔겠다고 결심하고, 팔기 위해서라면 부적절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아들 시원의 범죄 행각 또한 경제적 사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만수의 재취업이 없으면 과거는 회복되지 않는다. 엉성하지만 차례로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는 만수의 행각은 완전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어설픈 거짓말로 묵인된다. 묵인의 대가와 약간의 행운은 현재의 회복을 가져다준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딸 리원은 처음으로 훌륭한 연주를 해낸다. 그러나 그 연주의 리듬은 어딘가 이상하다. 부족하지도 서투르지도 않은데, 조급하고 불안하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끝에서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문제적 사실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에게 아주 멀기만 할 줄 알았던 것들은 우리의 곁에서 흘끔거리며 언제든지 다가올 태세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긴장을 풀 수가 없다. 필름에 비친 익숙한 모습은 바로 우리이기에, 그렇기에 블랙코미디를 자처하는 <어쩔수가없다>를 보며 우리는 웃음을 지을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자조일지도 모를, 시원한 웃음을 터트릴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