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사랑이 지나간 자리> : 씁쓸하고 달콤한 흔적

By 임채린
흘리뉘르 파울마손 감독의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크레인으로 지붕이 들어 올려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떨어져 나간 지붕과 집 사이로 틈이 생기고 바람이 불고 그림자가 드리운다. 집이 붕괴되는 이미지는 한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으로 연결된다. 어부 매그너스(스베리르 구드나손)와 예술가 안나(사가 가르다르스도티르)는 별거 중으로 첫째 딸과 쌍둥이 아들을 함께 육아하고 있다. 하지만 매그너스와 안나는 크레인에 달린 지붕처럼 과거에 매달려 있다.

영화에는 큰 다툼이나 극적인 사건은 없다. 대신 반복되는 이미지와 시간의 축적을 통해 별거로 인해 생기는 매그너스, 안나, 아이들 간의 변화를 관찰한다. 그 균열은 조용하게 일어나며, 미세하게 존재하는 것들이다. 어부라는 직업을 가진 매그너스는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에 물리적, 정서적으로 가족들과 단절된 위치에 놓인다. 점점 멀어지는 가족들과의 관계처럼 그는 무력하게 둥둥 떠다니며 표류할 뿐이다. 매그너스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그의 회한은 순간순간 일상을 침범해 온다. 가족들과 함께 간 피크닉에서 그를 덮은 안나의 치맛자락이 커튼처럼 펄럭이는 순간같이 아름답게 펼쳐지기도 하며, 거대한 수탉이 잠든 그를 공격하는 공포의 순간으로, 아이들이 쏜 활에 맞은 기사 마네킹이 그의 앞에 나타나는 고통스럽고 기묘한 순간으로 그의 일상에 침입한다. 

안나는 예술가로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매그너스에게는 달콤하고 쓸쓸한 감정이 사랑의 잔여물로 남아있듯이, 안나에게는 바래버린 사랑처럼 풍화되고 녹이 슨 철 조각으로 만든 작품이 그녀에게 남은 감정의 잔여물 같다.

영화에는 애환과 향수가 존재하지만, 과거를 좇지 않는다. 아이들이 활을 쏘고 노는 과녁이자 기사 모자를 쓴 마네킹을 통해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주며, 이는 가족의 일상 사이에 배치된다. 또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관계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서지기도 하고 다시 세워지기도 하고 관통되기도 하는 아이들이 만든 기사 모형의 마네킹은 아이슬란드의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다. 자연의 순환과 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이별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나타낸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통해 우리는 상실의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마주한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고통만이 남지 않는다. 존재하기에 생기는 아름다움을 부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면 오히려 사랑이 온전히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지붕이 뜯겨 나간 뒤 드리운 그림자가 상실의 그림자더라도 그 틈으로 햇살과 바람이 모두 들어오듯이,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고독과 고통, 아름다움 또한 모두 느낄 수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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